인터뷰2017.06.16 11:04

 

핵발전소는 안전하다, 위험한 것은 오작동이지 원전이 아니다.”

 

절대 잘못 될 일 없으니까 아무 문제없다고 떠들어대던 그들을 절대로 용서 못해!

                                                                 - 구로자와 아키라 영화 ’ -

 

2011311, 구로자와 아키라의 영화 의 악몽은 현실이 됐다. 희망의 대문에 절망의 문패를 거는 일, 그래서 희망을 절망으로 읽는 일, 그리하여 더는 희망의 문을 두드릴 수 없을 때 절망은 제 문을 연다.

 

방사능에 피폭된 꿈이 그 문을 통과하고, 세슘137에 기형이 된 나비들이 그 문을 통과한다. 돌아갈 수 없는 삶터를 참회록으로 닦아야 비로소 보이는 맑은 하늘은, 그런 것이다.

 

                                                                                                          <후쿠시마 5년의 생존> 마지막 부분 나레이션

 

 



<후쿠시마 5년의 생존>은 최세영 감독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난 지 1년 뒤인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일본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다.

 

다큐에 등장한 인물 가운데 오카와라 타츠코 씨(후쿠시마현 미하루 농민, 인형연극인)는 농산물 직판장을 운영한다. 직판장 진열대에 놓인 식자재에 방사능 수치가 적혀 있다. 감독은 미하루 주민들의 핵과 동거해야 하는 삶을 보여준다. 무토 루이코 씨(원전배상 책임단장)30년 전 체르노빌 사고 이후 후쿠시마현으로 거주지를 옮겼고 핵발전소 반대운동을 전개했다. 그녀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삶을 지향했고 도토리를 비롯해 가능하면 자연에서 먹을 것을 얻었다. 감독은 “2011년 사고로 방사능은 그녀의 숲을 점령했고, 그녀는 수확한 열매를 먹지 못한다고 알려준다.

 

61() <후쿠시마 5년의 생존> 다큐멘터리를 만든 최세영 감독(60)을 만났다. 최 감독은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 진행 중인 탈핵 학교첫 번째 강연자다. 최세영 감독은 이날 강연에서, 1961120일자 동아일보 한 꼭지를 소개했다. 당시 원자력연구소 이창건 연구관이 기고한 글에는 무얼 하든 우리에겐 하나의 신념이 있다. 보리 한 알이 죽어야만 많은 열매를 맺듯이 과도한 방사능에 피폭되면 생명이 단축되고, 병신이 되고, 심지어는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가늘고 긴 삶보다는 짧고 굵직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한 방사능이 결혼 후 자손에게 영향을 미치더라도 우리는 원자라는 씨앗의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최 감독은 고리1호기가 처음 건설될 때 가장 적극 옹호했던 사람이 이창건으로 우리나라 원전1세대라며, “이 사람은 그야말로 핵마피아라고 할 수 있다. 1958년부터 원자력계에 몸담았고, 원전을 지을 수 있는 원자력법을 만들고 정부조직도 만들었다고 했다. 이창건 씨는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으로 있다. 그는 한국원자력문화원장과 원자력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원자력문화진흥원에서 일했다.


 

                                               울산 탈핵학교에서 강연하는 최세영 감독 ©용석록

 


최 감독은 강연 뒤 인터뷰에서도 이창건 씨가 동아일보에 기고했던 글을 언급하며 한국 사회가 고리1호기 영구정지에 맞춰 원자력 역사를 재조명하고, 2017년을 반드시 탈핵원년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최세영 감독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맨 처음 <후쿠시마 5년의 생존>을 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2011년 사고가 일어난 몇 달 뒤에 경남 합천에서 열린 원폭피해자대회에 참가했다. 그때 일본 후쿠시마에서 무토 루이코 씨도 참여했는데 그는 사고 이후의 후쿠시마 상황을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들려줬다. 그래서 그분을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취재가 시작됐다.

 


현재 후쿠시마 사고와 관련한 일본 분위기는?


아베정권은 2020년 도쿄올림픽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일본 사회는 전체적으로 후쿠시마사고를 망각하자는 분위기 속에 있다. 후쿠시마에서는 도로를 재건하는 등 어마어마한 경제부흥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2012년도에 촬영 들어갔을 때에는 후쿠시마 시내에 방들이 텅텅 비어있었다. 3년째 들어서면서부터 건설인부들이 대거 유입돼 방을 구하기 어려웠다. 경제가 일어서니까 이주민들에 대한 관심은 더욱 낮아지는데, 나는 6년 지나는 현 상황에서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제염작업을 하고 있던데 효과는?


비와 바람 속에 섞인 낙진이 일본 전역에 자연 상태의 비로 떨어진다. 제염작업을 하고 있지만 깨끗해진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제염작업은 도시나 마을 중심이고 산 속은 손도 못 댄다. 이런 문제에 대해 도쿄대학 등이 새나 물고기, 곤충을 대상으로 계속 연구하고 있다. 문제는 공개를 잘 안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 대해 방사능을 측정해도 학교나 정부가 부모에게조차 그 수치를 공개 안 한다. 

 


본 정부가 피난이주민 귀환정책을 펴고 있는데 분위기는 어떤가?


일부는 귀환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위험하기도 하지만 가족 갈등문제가 심각하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후쿠시마에 살고 있지만, 엄마는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고 싶고, 아버지는 뭔가 해결해야 할 상황이고. 오카야마대학이 피난이주민들의 가족문제, 분열 등을 계속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망각하려고 해도 후쿠시마 사람들은 사고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20128월에 후쿠시마에 갔을 때 비가 엄청나게 내렸다. 그때 찍은 사진이 있는데 밭이 전부 다 오염돼서 누렇게 변했고 마을 전체가 텅 비어 있었다. 사고 후 5년이 지나면서 죽은 풀이 다시 초록으로 변했다. 영상에서 본 것처럼 20158월 후쿠시마현 이와키 해수욕장에서 해수욕을 즐기는 이들은 바다가 (모래와 바다가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당시 시민방사능측정소가 해수와 모래 방사능 수치를 쟀더니 방사능이 측정됐다.


 

망각 외에 다른 큰 흐름은 없나?


일본에 수많은 단체가 있는데 대부분 어머니, 여성들이 움직이고 활동도 활발하다. 후쿠시마사고 이후 만들어졌는데 전국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 다큐 속 인물들도 서로 아는 사람들인데, 그들은 핵발전소를 없애야 한다는 목표가 분명하다. 그런데 일본 내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담는 것을 차단한다. 2013년 특별법(정보보호법)이 생기면서 후쿠시마 관련 정보가 기밀이 됐다. 취재할 때, 일본은 이런 거 방송 안하니까 한국에서 방송한 다음 다시 일본으로 오게 해달라는 요청도 한다.

 


다큐 보니까 후쿠시마에서 채집한 나비가 형태변형을 일으켰던데...


오키나와에 있는 류큐대학교 조지 오타키 이공학부 교수가 20115월에 후쿠시마에서 채집한 나비와 다른 지역 나비를 실험실에서 관찰하고 있다. 후쿠시마에서 채집한 나비는 겹눈이 일그러지고, 더듬이나 다리가 짧아지는 등 형태 변형을 일으켰다. 인터넷상에 형태 이상한 꽃 등은 확인 안 해봐서 잘 모르겠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보여준 것은 연구를 통해서 나온 결과다. 사람에 대한 영향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후쿠시마는 죽음의 땅일 것만 같다. 그런데 다큐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희망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다시 보면 또 절망이고 그렇더라


그들은 절망이다. 절망만 갖고 살 수 없으니 선택도 해야 하는데, 지금 참회록으로 기록해야만 다음세대가 희망으로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나 일본이나 벌써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망각해가고 있다. 아무 일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절망이다. 고통스런 참회록을 써야 희망을 말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다.



핵발전소에 대해 관심 갖게 된 계기는?


후쿠시마사고 당시에 내가 뛰어들어서 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역사문화 다큐멘터리, 전쟁범죄자, 위안부 이런 쪽 다큐를 주로 작업했다. 합천도 그런 맥락으로 원폭피해자를 만나러 갔던 것이다. 무토 루이코 씨 이야기 들으면서 우리문제라고 생각했다. 당시 모든 언론이 후쿠시마 핵발전소사고를 다뤘는데, 나는 꾸준히 지켜보자는 입장이었다.

 


후쿠시마 취재로 건강상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는지?


건강에는 별 문제 없는 것 같다.


 

앞으로 만들고 싶은 작품은?


후쿠시마는 10년까지는 지켜보면서 10년 이후 다시 찍을 생각이다. 지금은 찍은 것 중에 보여주지 않은 것 작업하고, 국내에서 어떤 걸 만들어야하나 고민 중이다.

 

 

                             ▲여기 사는 것 자체가 저항 후쿠시마 핵발전소에서 11km 떨어진 곳에 사는 마츠무라 씨가 사고 이후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있는 모습. ©최세영

 

 


탈핵신문 2017년 6월호 (제53호)

용석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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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