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을 넘다, 이케우치 사토루, 나름북스, 2017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는 1950년 핵폭탄 개발의 산실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외계인이 왜 아직 지구를 방문하지 않았을까라고 묻는다. 그런데 외계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가 가능한 별들이 확률적으로 존재하지만, 그들 생명체가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고등문명을 지탱할 시간이 몇 백년이나 될까를 생각하면 그들과 우리가 조우할 확률은 극히 낮아진다. 인간의 고등문명은 채 1백여년이 못 되는 시간의 지평선을 갖고 있고, 그것은 인간이 핵과 방사능을 다루어 온 기간과 일치한다.

 

일본의 천체 물리학자인 이케우치 사토루 교수는 이렇게 시간의 지평선을 길게 보고 핵발전을 정면으로 응시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하면 자연스럽게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넘어서 핵을 넘어서 현재와 미래를 내다보게 될 텐데, 저자는 그럴 자격이 있는 전문가다.

 

저자는 일본이 처한, 특히 후쿠시마사고 이후의 고통스러운 상황에 천착하지만 그러나 일본 핵발전의 문제는 이미 출발부터 노정된 것이었다. 1955년 제정된 일본의 원자력기본법은 핵 연구 취지를 평화를 위한 것으로 제한했고, ‘자주적인 노력을 바탕으로 민주적으로 진행하며, 정보는 모두 공개한다는 원자력 3원칙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영국과 미국의 핵반응로를 급히 수입하면서 이러한 원칙들은 완전히 무시되었다.

 

그런데 이는 일본만의 사정이 아니다. 저자는 핵발전에 내재하는 필연적인 반윤리성을 지적한다. 우선 돈과 이권을 미끼로 위험물을 과소지대라 불리는 격오지 농어촌으로 떠넘기는 차별의 구조가 그것이다. 두 번째는 핵연료사이클의 전 과정 동안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피폭을 떠넘기는 것이다. 세 번째는 세대간 윤리의 문제로, 핵발전의 폐기물 처리와 보관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이처럼 반윤리성을 고유의 특성으로 지닌 과학기술은 그리 많지 않다.

 

저자는 핵의 문제를 단지 방사능과 사고의 위험뿐 아니라 석탄과 석유를 포함하는 지하자원문명이 갖는 속성의 문제로 확대해서 보고자 한다. 지하자원 문명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는데, 자원의 공급이 무한정 이뤄져야 하고, 그 폐기물을 버릴 수 있는 환경용량도 무한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폐기로 특징되는 지하자원 문명이 형성됐다. , 지하자원 문명이란 새로 사서 바꾸고 쓰고 버리는 걸 당연시하는 시스템이며, 이를 통해 눈앞의 돈벌이만을 목적으로 하는 경제 제도다. 석탄과 산업혁명, 석유와 자동차혁명, 핵발전과 IT혁명을 등치시켜 본다면 이해가 쉽다. 게다가 지하자원을 이용하는 기술 체계는 대형화, 집중화, 획일화라는 특징이 있다. 이에 비해 태양과 바람을 이용하는 지상자원문명의 기술 체계는 필연적으로 소형화, 분산화, 다양화될 수밖에 없다.

 

저자는 스스로 생각하는 인간으로서 지상자원 문명을 희망하며, 이 책이 특히 젊은이들의 모음 등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데 쓰일 수 있다면 기쁘겠다고 말한다. 새 정부의 탈핵 정책에 반대하는 입장을 낸 200여 명의 원자력 전문가들의 꿈은 무엇인가? 그들은 수십 만 년의 시간의 지평선을 가지고 스스로 생각하는 전문가들인가?

 

 

탈핵신문 2017년 6월호 (제53호)

김현우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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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