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로시마의 그늘, 윌프레드 버체트 지음, 표완수 옮김, 창작과비평사, 1995

 

 

수년 전부터 일군의 지질학자들은 지금의 지질시대를 우리가 교과서로 알고 있는 신생대 제4기 충적세 대신에 인류세(人類世)’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질시대의 명칭은 양치식물들이 땅에 묻혀 탄화된 시기라고 해서 붙여진 석탄기또는 프랑스 쥐라산맥에 그 시기의 지층이 분포해서 붙여진 쥐라기처럼 그 시기를 특징적으로 나타내는 이름을 갖는다. 말하자면 인류세는 인류가 하나의 지질시대를 만들어내고 대표할 정도로 어머어마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산업화로 초래된 기후변화, 플라스틱이나 콘크리트 같은 새로운 물질의 대량 생산은 수만 년 후대에도 인류 활동의 확연한 증거를 남길 것이다.

 

그런데 인류세의 시작을 심지어 1945716일로 특정하자는 학자들까지 있는데, 다름 아니라 미국 뉴멕시코주 알라모고도에서 최초의 핵폭탄 실험이 진행된 날이기 때문이다. 이 날부터 지구상에 인위적인 핵분열로만 생성되는 세슘, 플루토늄 같은 방사선 동위원소가 나타나서 지층에 각인될 것임을 생각하면 이 지질학자들의 주장이 무척 진지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한 달도 되지 않은 86일과 9,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리틀보이팻맨이라 불리는 핵폭탄이 투하되었다.

 

이 책은 우리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바로 그때의 장면을 생생히 전해주는 흔치 않은 고전이다. 필자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영국신문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기자로 있던 윌프레드 버체트로, 그는 2차 대전 말에 태평양 전선을 취재하다가 종군기자 일행과 따로 떨어져서 93일에 히로시마에 단독 잠입한다. 그는 고립되어 있던 폐허의 히로시마에 들어간 최초의 외국기자였을뿐 아니라, 그가 맥아더 사령부의 언론 통제를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유일무이한 기사를 송고했다.

 

미군사령부가 관할하는 도쿄의 공식 보도와 이를 받아쓰기 바빴던 세계의 언론들은 신형무기의 가공할 파괴력과 일본의 항복 소식만을 반복해서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윌프레드 버체트 기자가 본 히로시마는 차원을 달리하는 무서운 일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그도 어떻게 불러야할지 몰랐던 원자병을 만났다. 직접 핵폭탄의 섬광과 폭풍을 맞지 않았던 이들이 갑자기 힘없이 쓰러지고 피부가 곯아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에 히로시마의 의료진들은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그들뿐 아니라 그때까지는 세계에서 아무도 방사능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알지 못했다.

 

윌프레드 버체트 기자가 전송한 세계에 보내는 경고와 이후의 글과 증언들은 더욱 중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핵폭탄 투하 덕분에 우리가 광복을 맞았다고 알고 있지만, 미국이 핵폭탄을 사용하기로 한 것은 독일과 일본의 패전이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소련의 2차 대전 참전 이전에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정치적 결정이었다는 것,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희생자들은 사실상 미군의 실험대상이 되어 더 많은 희생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핵폭탄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수록 아인슈타인을 포함한 많은 세계적 과학자들이 강한 우려를 전했지만 모두 묵살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미 그 이후 냉전과 핵무기 경쟁에 대한 예상과 염려가 구체적으로 개진되었다는 것 등이다.

 

물론 더욱 중요한 메시지는 핵이라는 거대한 에너지는 처음 사용될 때부터 억압과 은폐, 기만을 수반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온 핵의 평화적 이용시대에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핵에너지는 주인 마음대로 언제든 램프 속에 쉽고 안전하게 봉인해 둘 수 있는 요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탈핵신문 2017년 8월호 (제55호)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부소장,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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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