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2017.08.11 17:29

신고리5·6호기 공론화로 탈핵운동진영은 물론 한국사회 전체가 탈핵에너지전환에 대한 논의와 논쟁으로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기 직전 에너지정의행동 두 명의 여성 활동가들은 ‘아름다운 재단’의 지원으로 ‘탈핵에너지전환 이행 과정에서의 갈등과 해법’을 찾기 위한 유럽현장 실사를 다녀왔습니다.


우리의 계획은 이랬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핀란드를 방문하여 각 나라가 탈핵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어떤 갈등을 겪었고, 이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를 알아보자. 그래서 곧 한국사회가 맞이하게 될 변화의 시기를 대비하자.


우리의 계획은 지난 3월에 시작되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이 결정되던 때였고, 조기 대선의 유력 후보들이 신고리5·6호기를 비롯해 탈핵에너지전환 정책에 조심스럽게 동의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10일(월) 우리의 현장탐방이 시작되었습니다. 새로이 당선된 대통령은 취임 한 달 후 탈핵국가를 선언하였고, 그 후속 조치로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과정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핵산업계의 조직적인 저항이 보수언론을 통해 나타나기 시작할 무렵이었고, 대통령의 탈핵국가선언에 대한 탈핵운동진영의 충분한 논의와 평가가 이뤄지기도 전에 그 후속조치가 시작되어 새로운 국면의 싸움을 준비할 때였습니다.

 

오래전부터 탈핵을 논의하고 실행해온 독일


독일은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오래전부터 탈핵을 논의하고 실행해 오고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프라이부르크를 방문하여 프라이부르크의 ‘보봉’마을과 그 인근의 ‘쉐나우’를 다녀왔습니다.


‘보봉’은 프라이부르크 외곽에 위치한 인구 5,000여명의 규모의 작은 마을입니다. 보봉은 프랑스와 스위스 경계와 인접해 2차 세계대전 이후 1992년까지 연합군이 주둔해 있었습니다. 그러다 1992년 연합군이 철수를 하면서, 시민들은 ‘보봉포럼’을 만들어 연합군이 주둔하던 부지를 차가 없는 마을, 에너지를 적게 쓰는 생태마을 ‘보봉’을 조성하기로 결정합니다.


시의회는 시민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전문가들이 투입되어 시민들의 생태마을 구상이 실현가능하도록 함께 보조를 맞추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시민들의 관심과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지역의 활동가들은 부단한 노력을 해야 했고, 주민들의 구상과 달리 도시계획을 추진하려 시도하는 시 행정에 맞서 기금을 모으고 행정과 기나긴 줄다리기도 해야 했습니다.


‘보봉’마을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연립주택 곳곳에 붙은 탈핵을 지지하는 스티커와 깃발이었습니다. 보봉포럼을 통해 저에너지마을을 만들기로 한 배경에는 핵발전소로부터 벗어나자는 시민들의 의지가 있었고, 저에너지마을을 어느 정도 구축한 현재 시점에도 이곳 마을 주민들은 탈핵에 대한 목소리와 긴장감을 놓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 ‘보봉’마을의 연립주택 곳곳에서 탈핵 현수막과 스티커, 깃발을 볼 수 있었다. 현수막에는 ‘페센하임 원전 폐쇄!’라고 쓰여져 있다.

 

‘쉐나우’는 프라이부르크로부터 자동차로 약 한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인구 2,500명 규모의 작은 시골 마을입니다. ‘쉐나우’는 흑림 지대로도 유명합니다. ‘세나우’는 흑림 지대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기도 하지만, 깊고 울창한 ‘흑림’지대를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이 흑림은 ‘쉐나우’ 주민들의 삶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체르노빌로부터 2,000km나 떨어져 있는 ‘쉐나우’ 마을이 방사능 낙진으로부터 피해를 입고, 흑림이 오염되는 것을 지켜보며 주민들은 핵발전을 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쉐나우’ 주민들은 ‘핵발전 없는 미래를 위한 부모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탈핵교육과 에너지절약 캠페인 등의 활동을 시작합니다.


그러다 주민들은 전력공급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전력회사의 문제를 인식하게 됩니다. 에너지절약 캠페인 등으로 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였지만 전력회사들은 전기를 많이 쓰는 소비자들에게 전기요금 혜택을 주는 등 이 관계를 벗어나지 않으면 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 주민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이에 ‘쉐나우’ 주민들은 재생가능에너지로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는 에너지 독립마을을 구상하고, 핵발전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 차례의 국민투표를 거쳐, 시와 독점적으로 계약을 맺고 있던 라인훼르덴전력회사(KWR)로부터 전력망을 매입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에너지를 통해 전기를 생산하고 주민들이 주주가 된 ‘쉐나우전력회사(EWS)’를 설립하였습니다. 지금 EWS는 ‘쉐나우’를 넘어 독일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시민들의 에너지독립 활동, 즉 시민들의 ‘반군(叛軍)발전소’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쉐나우’ 주민들을 EWS의 이러한 활동들로 독일이 탈핵을 하고, 에너지 민주주의와 에너지정의를 실현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쉐나우’를 방문하면서 두 가지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하나는 EWS 사무실에 독일 탈핵단체가 발행하는 수개월치의 계간지와 각종 탈핵 스티커, 리플렛이 비치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핵발전을 거부하고 에너지독립을 실현한 ‘쉐나우’ 마을이 산골마을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마을의 집들과 경관, 주민들의 생활 모습이 세련되었다는 점입니다.

 

▲ ‘쉐나우전력회사(EWS)’ 사무실 현관에 탈핵 포스터가 붙어 있다. 포스터에는 ‘후쿠시마 사고 후 5년, 체르노빌

사고 후 30년, 그러나 아직도 독일에는 8기의 핵발전소 가동 중. 탈핵에 더 속도를 내자!’라고 쓰여져 있다. 

 

탈핵신문 2017년 8월홓 (재55호)
정수희 통신원(에너지정의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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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