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민주주의』        이영희, 문학과지성사, 2011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 논쟁이 한창이다. 여기서 활용되고 있는 공론화시민참여라는 방식은 한국에서 아직 낯선 게 사실인데,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과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위한 고민이 상당히 깊이있게 전개되어 왔거니와, 공론화위원회와 유사한 실험들도 수차례 진행되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색을 주도해온 이들 중 한 사람인 이영희 교수의 이 논문모음집을 통해 우리는 그 과정과 맥락을 속성학습할 수 있다.

 

과학기술을 민주주의와 연결시켜 볼 필요성은 과학기술이 민주주의를 가로막거나 증진시킬 수도 있고, 거꾸로 민주주의를 결여한 과학기술이 이기(利器)가 되기는커녕 우리의 삶을 크게 위협할 수도 있다는 경험에서 비롯한다. 특히나 한국은 박정희 시대부터 고취한 과학기술입국정책의 영향으로,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과학기술 자체가 진보이자 모든 사회 문제의 해결책으로 믿는 과학기술 맹신주의가 만연해있다는 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고삐 풀린 과학기술의 질주에 대해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는 것은 희망적인 측면이다.

 

과학기술은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처럼 간주되어 왔고, 이른바 전문가들은 정치와 경제의 영역에서도 과학기술의 예외주의를 주장하곤 했다. 그러나 자신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과학기술에 대해 시민들의 민주적 통제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정치적 사회적 민주화가 진전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반쪽자리 민주주의에 불과하다. 이는 특히 현대 사회의 에너지의 문제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석유와 전기 같은 에너지 매개물만큼 현대인들의 의존도가 높고 많은 선택과 갈등을 수반하지만, 시민들과 가장 먼 곳에서 즉 가장 비민주적으로 정책 결정과 집행이 이루어지는 것도 드물기 때문이다.

 

1960년대에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자크 엘륄은 기술이 그 자체로 자신의 특별한 법칙과 결정력을 지닌 하나의 실재가 되었고, 따라서 기술사회에서 인간은 자신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술에 대한 어떠한 통제력도 가질 수 없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슬픈 숙명론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과학기술은 인간의 해석과 대응을 통해 여러 갈래의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기술의 사회적 형성론이 등장했고, 그 수단으로 시민참여도 주목받게 되었다.

 

물론 시민참여 확산의 배경에는 2차 대전 이후 과학기술과 과학자에 대한 대중적 신뢰의 하락이 있다. ‘꿈의 살충제’ DDT의 치명적 부작용, 대량 살상무기, 동물실험, 핵무기와 핵발전도 그 중 하나였다. 1960년대 후반에는 기술관료주의에 강하게 반발한 반문화-반체제운동의 기운까지 더해져서, 과학기술적 의사결정을 소수의 기술관료와 전문가들에게 맡겨두지 말고 일반 시민들의 참여를 요구해야 한다는 논리가 확산되었다.

 

이렇게 등장한 기술시민권사상은 첫째, 지식 혹은 정보에 대한 접근권리, 둘째, 기술정책 결정 과정에 대한 참여의 권리, 셋째, 의사결정이 합의에 기초해야 함을 주장할 권리, 넷째, 집단이나 개인들을 위험에 빠트릴 가능성을 제한할 권리 등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생각과 논의들을 바탕으로 1970년대 들어서서 다양한 시민참여의 모델이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시민배심원제, 합의회의, 포커스 그룹, 시나리오 워크숍, 참여설계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1998년 유전자조작 식품 합의회의를 시작으로 해를 거듭하며 시민참여의 다양한 모델들이 모색되었음을 알려준다. 특히 부안 방폐장 갈등 직후 2004년에 시민과학센터가 주도한 전력정책 합의회의는 그 방식과 내용 모두 지금의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와 관련해서도 생생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탈핵신문 2017년 9월호 (제56호)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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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