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외, 탈핵 비판, 글마당, 2017

 

다만 내가 이 자리를 빌어 국민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넉넉한 부존자원을 갖지 못한 우리가 세계의 부강한 나라들과 어깨를 겨루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소에 검소하고 절약하는 기풍을 계속 길러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름 한 방울을 아끼고, 전기 사용에서도 낭비를 삼가는 알뜰한 생활태도를 미풍으로 삼으면서 한편으로는 태양열 조력 풍력 등 새로운 자원을 연구개발하는 데에도 적극적으로 눈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옛날 말투이긴 하지만 지금도 지당한 말이다. 그런데 이는 실은 1978년 고리1호기 준공 및 5·6호기 기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한 연설의 일부다. 박 대통령이 주문한 재생가능에너지 보급 부분은 40년이 지나도 턱없이 부진한 상태이지만, 이 책의 대표저자인 이정훈(동아일보 전문기자)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이룩한 이이며, 탈핵 정책을 언급하는 지금의 대통령은 없애는 이. 그는 에너지 정책이 이념의 문제나 정치적 논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에너지정치에 무척이나 민감하다.

 

예를 들어, 박원순 서울시장이 과거에 부안 방폐장의 정책적 오류를 비판한 것과 원전 하나 줄이기운동을 시작한 것을 두고 탈핵을 정치화하는 것에 사람들이 주목하지 못했다고 탄식하고, 삼척과 영덕의 원전유치 찬반 주민투표 같은 시도가 재연될 것을 염려한다.

 

그에 따르면 원자력은 찬반이 뚜렷한 분야이기 때문에 쉽게 광장의 정치를 만들고, 국민투표나 주민투표로 결정하려는 경향이 일어난다. 그리고 원자력 문제를 공청회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로 결정한 경험은 곧 다른 분야로 확대될 수 있으며, 극단적으로는 군 복무기간도 직접 민주주의로 결정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대한민국의 안보는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지키려면 대의정치를 지켜야 하고 정책 결정은 전문가와 관료에게 맡겨야 한다는 뜻임을 숨기지 않는다.

 

나아가서 그는 문재인 정부의 탈핵 공약이 헌법 체계를 뒤흔드는 것이므로 박정희 대통령의 혁명공약과 다름없다고 본다. 한국의 현행 원자력 관련 법률과 명령들은 원자력을 하자는 것인데, 따라서 탈원전 공약을 시행하려면 헌법 질서에 따라 만든 이러한 법을 무력화하는 입법 노력부터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원자력진흥법을 폐지하거나 탈원전에 관한 특별법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인데, 말 자체는 옳다.

 

이 책의 주장들 중에는 대선 시기에 영남지역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탈핵 공약을 내세웠다는 것처럼 과도한 것들도 있지만, 그리고 북핵의 위협과 탈핵을 대조시키고 또 결부시킴으로써 자극적인 논리를 극대화하고 있지만, 이정훈 기자는 이처럼 핵발전과 에너지정치 사이의 관계를 역설적으로 생생히 드러내준다.

 

이 책은 탈핵을 위한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위해서라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 신고리5·6호기 공론화 과정에서 건설재개 측과 핵발전 찬성 언론들이 활용한 논리와 사례들 대부분이 차곡차곡 담겨있기 때문이다. 대만이 탈핵으로 전력대란이 일어났다거나, 후쿠시마 사고는 지진 때문이 아니라거나, 탈핵하면 전력요금이 3.3배 폭등한다거나, 핵발전 부품 국산화에 매진해온 중소기업들이 몰락할 지경이라는 이야기들은 지난 몇 달간 알뜰히 확대 재생산되었다.

 

이 책의 한 글에서 정범진 교수는 환경이 에너지를 지배하는 것이 좋은 세상인가라고 물으며, 인간이라는 주체를 둘러싼 객체인 환경이 인간을 결정하는 것은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철학과 세계관의 커다란 차이를 대놓고 확인하면서도, 우리는 탈핵 비판을 넘고 넘어서기 위한 공부와 담론 개발, 유포에 더욱 매진해야 할 필요를 절감한다. 적어도 이 필자들의 그 치열함을 배워야 한다.

 

탈핵신문 2017년 11월호 (제57호)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부소장,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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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