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슈2018.03.06 17:45

탈핵 에너지전환을 공약했던 신정부가 들어선 이후, 여러 논란 속에서도 새로운 에너지정책이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장기적으로 핵발전을 줄여가겠다는 탈핵로드맵이 공표되었고, 2030년까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발전량의 20%를 채우겠다는 ‘3020계획도 발표되었다. 그리고 이를 종합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도 수립되었다. 그런데 각 계획이 제시하고 있는 목표 그리고 세부 계획이 얼마나 충실한가에 대한 논란과 별개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탈핵로드맵이나 2030계획은 법적 기반을 가진 것이 아니며, 8차 전기본은 매 2년마다 수립되는 것으로 정권 변화에 따라서 사실상 언제든 수정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견고한 사회적 합의에 기반을 둘 뿐 아니라, 법적 지위도 가진 장기 계획이 필요하다.

 

정부, 3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에 들어갔고, 올 연말 마무리 예정

 

이런 고민 속에서 2040년까지를 계획 기간으로 하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하, 에기본)1차 에너지기본계획의 성격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정부는 이미 제3차 에기본 수립 절차에 들어갔으며 올 연말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3차 에기본이 에너지전환계획이 되기 위해서는 필요한 요소들이 많이 있다. 당연히 핵 및 화석에너지 이용을 확대·지속하려는 관성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두드러진 관심사일 것이고, 이미 발표된 계획 등에 담겨진 주요 내용들이 제대로 반영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31년을 계획기간으로 하는 8차 전기본에 제시한 목표로는 탈핵도 기후변화 대응도 보장할 수 없다. 보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변화를 보장하는 계획이 필요하다. 또한 증가하기만 하는 에너지 수요는 언제쯤 정점을 찍고 감소할 것인지도 정해야 하며, 그와 연동하여 파리협약 2목표의 국제 책임에 부합하는 새로운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설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현 정부에서도 미루어지고 있는 에너지 분권과 자치 그리고 (에너지)산업구조 개편 논의도 시작되어야 한다.

 

3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과정 변화 없이, 내용적 진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용뿐만 아니라 수립 과정의 방법에서도 큰 변화가 필요하다. 사실 수립 과정의 변화 없이는 내용에서도 큰 진전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작년 신고리5·6호기 공론화는 여러 논란을 야기했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에너지정책을 주물러 왔던 소위 전문가들이 안정성과 경제성을 이유로 얼마나 보수적인 태도를 취해 왔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보다 진전된 에너지전환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일반 시민들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계획 수립 과정에 참여하고 사회적 논쟁을 거친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또한 기존 전문가들이 에너지전환이 불가능하거나 혹은 천천히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로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편리를 위한 에너지 소비 증가와 값싼 에너지 요금 선호에 대해서 성찰하고 재고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돌이켜 보면 한국의 에너지정책은 조금씩 개방되고 민주화되어 왔으나, 여전히 관료-정치인, 전문가 그리고 기업들의 삼각동맹의 손아귀에 놓여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수립되어 온 제1~2차 에기본 수립 과정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시민참여를 조금씩 확대해왔다. 1차 에기본은 에너지위원회와 산하 전문위원회에 시민단체 추천 전문가나 활동가들을 참여시켰으며,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수립된 2차 에기본에서도 민관TF를 구성하여 많은 외부 전문가와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참여시켰다. 그러나 엘리트 시민들의 참여로 국한되면서, 결과적으로 두 계획 모두 에너지전환 주장을 회피하고 기존의 에너지시스템을 지속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반면 신정부는 일반 시민들이 에너지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하는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었다. 대통령 공약의 후퇴를 정당화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지만, 신고리5·6호기공론화 활동은 시민참여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이는 계기가 된 점만은 분명하다.

 

다양한 에너지미래 담은 복수의 시나리오 마련해, ‘사회적 공론화과정을 도입해 선택하자!

 

현재 산업부는 제1~2차 에기본 때와 비슷하게, 관료, 전문가, 기업들을 중심으로 하고 일부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참여시키면서 참여 범위를 제한하고 있다. 또한 논의 주제도 전력 부문 그리고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참여하는 범위도 넓히고, 토론하는 주제도 확대해야 한다. 산업부 이외에 환경부, 국토부 등도 관여해야 하며, 지방정부, 사회적경제조직 그리고 일반 시민들까지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사회적 공론화과정을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작년의 공론화의 주제가 이미 공사에 들어간 신고리5·6호기의 건설 재개에 대한 것으로 적절성을 의심받았다. 이제 2040년까지의 장기적인 에너지미래를 설계하는데, 즉 제3차 에기본의 수립 과정에서 공론화의 강점을 활용해볼 수 있다.

 

공론화는 무작위로 선발된 시민들이 다양한 에너지미래를 담은 복수의 시나리오들에 대해서 토론하고 선택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다. 에너지시나리오는 미래 시점(과 경과 시점)의 수요전망 및 에너지원 믹스뿐만 아니라 에너지세제(가격), 에너지산업구조개편, 에너지분권 등의 측면까지 포함하는 정성 및 정량 시나리오를 의미한다. 누군가는 수소경제가 대안이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장기적으로도 천연가스 사용이 불가피하다고도 한다. 재생에너지와 핵발전이 양립가능하다는 분석과 100% 재생에너지가 가능하다는 전망이 엇갈린다. 또한 에너지 수요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과 십년 안에 에너지 수요가 정점에 도달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전면적인 에너지분권과 자치는 기술·경제적으로 효율성이 낮다는 주장과 반박도 존재한다. 다양한 분석과 주장 속에서 어떤 미래가 바람직하며 또한 가능한지, 그리고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지 분석하고, 다양한 가정, 목표와 정책을 담은 상이한 시나리오를 만들어내자. 그리고 시민들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토론하도록 하자.

 

구체적으로 제안해보자. 상반기 안에 정부가 구성하는 제3차 에기본 워킹그룹들은 총괄분과의 지휘 아래에 여러 전문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다양한 미래를 담은 복수의 에너지시나리오를 개발하자. 또한 별도의 공론화 준비위원회를 구성하여 구체적인 토론과 선택 방법을 마련하자. 그리고 9~10월경, 에너지위원회 등의 공식적인 의사결정 과정 전에 일반 시민들이 참여·토론하는 공론화를 진행하자. 여기서 선택된 바람직한 시나리오에 기반을 두고 제3차 에기본의 주요 방향으로 삼자. 에너지전환은 민주주의 심화와 함께 전진하는 것이다.

 

1~2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과정에서 시민참여 문제가 일부 진전은 있었지만, ‘엘리트 시민의 참여에 국한되면서

지속적인 저항과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사진은 201312,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은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의

핵발전소 증설 계획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진행했다. 사진출처=참여연대 홈페이지

 

한재각(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운영부소장)

탈핵신문 2018년 3월호

Posted by 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