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2018.04.16 16:05

탈핵 운동의 흐름이 최근 들어서 급격히 변해가고 있다.

 

과거부터 돌아보면 이명박 정부 하에서 탈핵 진영은 반대 운동을 조직하기도 버거운 상태였다. 국제적으로는 원자력 르네상스가 조성되면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고, 2009년 핵발전소 수출을 계기로 국내에서는 반론조차 제기하기 어려운 대못마저 박히고 말았다. 그러다가 2011년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에서 발생했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탈핵 진영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핵에너지나 원자력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핵발전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핵발전에 대한 문제를 공공연하게 제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박원순 시장의 원전 하나 줄이기위원과 환경단체에서 실무자로 일했던 경력의 인사들이 청와대에 포진하고 있으니, ‘탈핵 르네상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그렇지만 기회는 곧 위기일 수 있다. 우리말로 위기(危機)’에는 위험과 기회라는 두 가지 의미가 결합되어져 있다. 영어에서도 ‘risk’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부담이나 비용을 의미한다. 투자자들이 고려하는 리스크는 기대했던 주식 대박이 어긋났을 때 잃어버릴 수 있는 경제적 손실일 수 있다. 20세기말 한국과 전 세계를 휩쓸었던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위험사회론도 바로 이러한 현대사회의 발전이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이라는 부담을 경고했던 이론적 체계였다. 이처럼 위기에는 위험과 기회라는 의미가 함께 담겨져 있다.

 

지금의 탈핵 운동은 바로 이러한 위기에 처해있다. ,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고려하지 못한 채, 장밋빛 르네상스의 모습만 바라보고 있다면 현실을 오판할 수 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 공약에 탈핵 공약이 번듯하게 들어가 있고, 산업부의 담당 관료들이 전격적으로 교체되었으며, 과거에 비난받았던 원자력문화재단은 간판을 바꿔달아야 했을 뿐만 아니라 핵발전소 건설 및 운영의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도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달라진 현실에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기회뿐만 아니라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먼저 지난 신고리5·6호기의 공론화로 인한 탈핵 진영이 입었던 내상은 쉽사리 치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대통령이 세상을 바꿔줄 것이라고 믿으며, 오랫동안 힘겹게 싸웠던 밀양 주민들이 공론화 과정에서 느꼈던 실망과 좌절을 과연 누가 달래줄 수 있을까? 전반적으로 탈핵 진영은 공론화에 대한 참여 여부를 놓고 벌였던 견해 차이와 이후의 진행 방식 및 절차에 대한 논란으로 인해 감정적 상처라는 갈등을 겪고 있다. 이처럼 탈핵 진영이 처한 위험은 지금의 장밋빛 현상에 가려져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나가야 할까? 역시나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지나온 역사를 통해서 앞으로의 미래를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 탈핵 진영의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의 과거부터 차분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10여 년 전 참여정부 출범을 선언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국정 개입을 일상화시키겠다며, 국민주권의 시대를 표방했었다. 실제로 당시 정부는 시민단체를 국가 운영의 주체이자 중요한 행위자로 받아들였었다. 덕분에 새로운 권력의 주체로 등장한 시민단체는 각종 국가위원회에 참여하며, 정부로부터 막대한 지원금도 받아낼 수 있었다. 바야흐로 시민운동의 전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역시나 기회는 곧 위험으로 뒤바뀌고 말았다. 5년 임기를 마무리하고 후임으로 선출된 이명박 정부는 취임 첫 해에 광우병 파동이라는 혼란을 겪으면서 시민단체를 촛불단체로 규정한 뒤, 모든 지원금을 삭감하고 권한을 박탈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시민 없는 시민단체라는 내부적인 문제까지 엎친 데 덮치면서 암흑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지금의 탈핵 르네상스라는 현상이 한국 사회에서 과연 얼마나 지속될까? 물론 이번 정권까지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보수 진영의 잃어버린 10년이 도래하면 아마도 다음 정권까지는 버틸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나 이번에 개헌이 이루어지고 다음 정권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조금 더 연장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역시나 위험은 잠재되어져 있을 뿐이며, 정권이 길어질수록 나중에 더 큰 파도로 덮쳐올 것이다.

 

그렇다면 기회와 위험이 공존하는 지금의 시기에 탈핵 진영이 가야할 방향은 어디일까? 손 안에 쥐고 있는 권력을 기반으로 무분별하게 외연을 확장하는 것만이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다. 원칙으로 돌아가서, 탈핵운동과 시민단체는 청와대나 권력이 아니라 시민들 속으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탈핵 진영이 시민들로부터 괴리된 채, 권력에 의존할 경우에는 우호적인 정권의 보호막이 사라지는 순간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탈핵운동은 60년 동안 싸워야 하는 기나긴 여정이다. 핵 없는 사회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가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

 

탈핵신문 2018년 4월호

진상현(경북대학교 행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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