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국가에너지위원회 출범과 사용후핵연료 공론화TF

 

이헌석 편집위원


 

200412월 제253차 원자력위원회 결정이 있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방사성폐기물 정책은 고준위와 중·저준위가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단지 방사성폐기물 전체를 묶은 계획만 존재했을 뿐이다. 그러나 2004년 제253차 원자력위원회는 중·저준위과 고준위 방폐물 정책을 구분하였고, 그 결과 중·저준위 방폐장 계획을 먼저 진행하기로 결정한다. 고준위 폐기물에 대해서는 ·장기적 논의를 거쳐 국민적 공감대하에 추진한다는 원칙적인 설명만 있을 뿐이었다.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 정책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경주 방폐장 주민투표가 끝난 이후인 2007년이었다. 2007년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을 논의하기 위한 TF(이하 공론화 TF)를 만들었다. 공론화 TF는 원자력학계, 비원자력학계, 한수원, 시민사회단체,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형태를 띠었다.

20074월부터 약 1년간 활동했던 공론화 TF는 권고보고서를 통해 공론화 방식을 통한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 마련의 필요성과 공론화의 기본 원칙 등을 제시한다.

 

<국가에너지위원회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TF(2008)의 공론화 원칙>

공론화원칙

(PRESIDENT-Rule)

내용

민주성(Participation)

이해관계자, 전문가, 시민이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공평하게 참여하며, 공론화 결과는 최종 결정에 반드시 일정 수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어야 한다.

책임성(Responsibility)

참여자들은 각각의 역할에 대해 그 범위와 한계를 확인하고, 공론화를 통해 결정된 사항에 대해 도덕적, 규범적, 실질적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도덕성(Ethic)

참여자들은 공론화 과정에 자발적 의사로 참여해야 하며, 의견 개진에 있어 이해 가능한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진정성(Sincerity)

공론화가 형식에 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참여자들은 충분히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이해관계 조정을 통한 합의적 공론을 이끌어 내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실천해야 한다.

독립성

(Independence)

공론화는 정치적, 재정적으로 이해관계자로부터 독립된 전담기구 혹은 위원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며, 해당 기구 혹은 위원회에는 공론화에 관한 권한과 책임이 국가 차원에서 위임되어야 한다.

숙의성

(DEliberation)

공론화의 목적이 다수의 의견 수렴이 아니라 논쟁과 의견 조정을 거쳐 최선의 정책을 생산하는 데 있음을 인지하고, 정부는 물론 모든 참여자들은 충분한 학습과 진지한 토론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회귀성

(Non-linearness)

공론화를 거쳐 결정된 사항이라 할지라도 치명적 문제점이 확인되었을 경우 논의를 원점으로 돌릴 수 있어야 한다.

투명성(Transparency)

공론화 진행 사항 및 관련 자료에 대해서는 충분한 공개와 장벽 없는 정보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편 이와 별도로 20076, 산업자원부는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입법예고를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비롯 중·저준위핵폐기물을 관리하기 위한 법적 근거를 준비한다. 처음 제출된 정부의 방사성폐기물 관리법은 국가에너지위원회와 별도 산자부 소속 방사성폐기물관리위원회를 구성하여 부지선정과 공론화를 진행하고 방폐물 처리의 정의에 저장, 처분이외에 재활용을 포함시킴으로써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포함할 수 있게 하는가 하면 한수원의 방폐물관리기금 납부를 10년 유예하고, 정부의 기금출자도 가능하게해서 오염자 부담원칙을 훼손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에 직면하게 된다.

2008년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재활용 규정이 빠지는 등 일부 수정이 있기는 했으나, 큰 틀은 변하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르게 된다. 방사성폐기물관리법은 공론화위원회의 위상, 성격, 역할 등 세부적인 쟁점에 대해서는 일부 한계를 갖고 있지만, 처음으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공전의 공전을 거듭한 공론화 위원회

공론화위원회 구성 등에 대한 논점은 남아 있었지만 사회적 공론화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꺾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정부는 하나씩 공론화위원회 출범을 위한 준비를 진행했지만, 2008년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공론에 붙일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 대표적인 증가가 200986일로 예정되어 있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출범 연기사건이다. 20088월 국가에너지위원회 보고를 통해 공론화 추진을 결정한 상태였으며, 20095월에는 공론화 추진의 상세프로그램에 대한 용역 보고서까지 나온 상황이었다. 누가보더라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는 정상적으로 추진될 상황이었다. 같은 해 7월 김명자 전 환경부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공론화위원회 구성이 완료되고, 양재동에 사무실까지 확보하면서 공론화 위원회는 출범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당시 이러한 흐름에 시민사회단체는 철저히 배제되고 있었다. 노무현 정부에서의 국가에너지위원회는 이미 녹색성장위원회 출범을 통해 지식경제부 산하 위원회로 격하되었고, 4대강문제와 미국산 소고기 사태를 거치면서 정부와 시민사회진영의 거버넌스는 완전히 두절된 상태였다. 이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도 마찬가지여서 위원장을 비롯 15명 규모의 위원 중 시민사회진영과 교감이 있는 이는 거의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프로그램은 시작부터 비판에 직면해 있었다. 그러나 결국 공론화위원회 출범 연기로 그나마 진행되지 않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진다.

이후 정부는 연구가 부족하다며 몇 차례 연구용역을 발주한다. 비슷비슷한 연구용역 발주를 통해 시간만 허비하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더 이상 연구용역조차 할 것이 없어진 201111, 지식경제부는 다시 원자력정책포럼’(추후 사용후핵연료 정책포럼으로 이름이 바뀜)을 시민사회진영에 제안한다. 그러나 시민사회진영은 정책포럼이 법률로 지정된 공론화위원회가 아닌 임의단체이며 정책포럼의 성격이 단순한 의견수렴기구이고 목적이 기존 진행된 연구용역에 대한 의견수렴 및 원자력위원회 안건초안 도출이며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등의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적절치 않다는 의견에 따라 참여하지 않았다.

아직 출발선에 서있는 박근혜 정부의 공론화 계획

이명박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정책은 아무것도 추진한 것이 없었기에 ‘5이라는 시간을 그대로 허비한 것으로 끝나버렸다. 이를 반성이라도 하듯, 박근혜 정부는 대통령직 인수위 140대 국정과제에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프로그램을 포함시키며, ‘이번에는 시작한다는 의욕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의욕에도 불구하고 2008년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제정 당시, 공론화위원회가 갖고 있었던 법적 한계는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법적 한계를 운영의 묘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또다시 보여주기식 공론화프로그램 진행으로 사용후핵연료 문제 또한 깊은 수렁속으로 빠지게 될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분명한 것은 공론화라는 원래의 뜻대로 우리 국민 모두가 납득할 만한 결론에 이를 수 있도록 충분히 숙의(熟議)’하는 과정이 되지 않는다면, 공론화 프로그램은 시간과 돈, 그리고 명분마저 버리는 최악의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발행일 : 2013.9.6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