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의 탈핵도서 순례: 방사능 앞에서 살아남을 자 누구인가?

핵충이 나타났다, 신기활, 길찾기, 2013.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이 거친 필체의 만화는 요즘 보기 어려운 스타일이다. 그럼에도 기발하고 참으로 풍자적이다. 내력을 말하자면, 자그마치 사반세기도 더 된 1985년에 시대정신이라는 문예지 2호에 신종봉이라는 작가의 ‘AF100년 후의 핵충 엑소더스가 실렸고, 이후의 연작들까지 모아 1989년에 친구 출판사에서 핵충이 나타났다라는 단행본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2011년에 SYNC(싱크)라는 만화잡지에 다시 연재되었다가, 20133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2주기를 맞아 다시 단행본으로 선을 보이게 되었다. 그만큼 시대를 살아남은, 지금도 충분히 읽힐 가치가 있는 만화라 하겠다.

신기활은 신종봉님의 작가명인데, 중학교 미술교사를 하면서 그렸던 작품들이라 한다. 당시의 국제정세를 바라보는 안목과 이를 핵충이라는 우의적 주인공들로 소화해내는 스토리 구성력이 대단하다. 만화는 핵발전 자체에 대한 비판 보다는 퍼싱2SS20 미사일로 첨예하게 대치하던 동서진영 냉전 체제에 대한 고발이 주를 이룬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때까지 한국은 이렇다 할 반핵운동이라는 것이 형성되기 전이었고, 또 한반도가 실제로 미국과 구 소련의 대립 사이에서 핵전쟁의 마당이 될 위기감이 팽배했던 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많이 불리던 반전반핵가민족의 생존이 핵폭풍 전야에 섰다, 이 땅의 양심들아 어깨 걸고 나가자라고 노래했던 것이다.

탈핵운동은 고사하고 한국의 반핵운동조차 자리잡기 전이었다는 말은, 핵발전소도 고압송전선로도 거의 아무런 저항없이 지어지던 시절이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상황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안면도 사태라 불렸던 199011월의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투쟁이 계기였던 것 같다. 그 때 이후 핵발전소 종사자의 피폭문제, 방폐장문제가 연달아 사회 이슈가 되며 반핵운동이 성장했지만, 그 전까지는 반핵은 핵무기에 관련한 것에 국한되었다.

핵충은 어쨌든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존재다. 인류가 일으킨 핵전쟁 이후(After Fire)라는 뜻의 연대기인 AF100년을 무대로 하여, 방사능 물질을 섭취하며 생활하는 핵충이 지구에서 살아남아 그들 나름의 생존투쟁을 펼친다. 이들에게는 중성자탄 사우나가 약이고, 단백질과 포도당 같은 물질은 독극물이다. 핵충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핵무기와 중금속 같은 식량은 고갈 위기에 처하고, 남은 핵물질을 찾아 바다를 건너 목숨을 건 표류 항해를 떠나기도 한다.

다섯 편의 에피소드 곳곳에는 이 핵충 세계를 만들어 낸 인간의 흔적이 곳곳에 드러난다. 핵충들은 원자폭탄의 개발자와 트루만 대통령에게 감사하고, 이를 저지하려 한 반핵주의자들을 저주한다. 핵충이 찾아낸 핵미사일 기지에는 미국과 소련의 상호보복 공격의 마지막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1945716일 원자탄 실험이 벌어졌던 알라모고도 사막에서는 핵물질을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핵공룡이 자란다.

방사능풍의 진원지를 찾아나선 핵충들이 마지막에 발견하는 핵토피아는 결국 폐허가 된 한반도 부산의 풍경으로 그려진다. 천만 다행이게도, 신기활 선생님이 우려하던 세계적 핵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핵무기의 위협은 사라진 게 아니며, 전 세계에 400개가 넘게 가동되고 있는 핵발전소와 관련 시설의 위험성은 더욱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핵충은 존재 가능할까? 공상과학에는 방사선에 피폭된 후 커다란 괴수가 되거나 초능력을 얻게 된 영웅들이 등장하곤 하지만, 방사능은 세포와 조직을 파괴하고 교란시키므로 죽지 않으면 더 열악한 생체를 만들어낼 뿐이다.

피라미드에서 살아남기, 공룡세계에서 살아남기같은 아동만화 시리즈 중에 방사능에서 살아남기라는 책까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핵충은 유기물과 애초 다른 원리의 존재다. 우리도, 우리 자손도 핵충과 같이 살아남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발행일 : 2014.1.6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