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8일 수요일 2면 기사
박혜령 준비위원 



 
2010년 12월 중순, 영덕군수가 핵발전소 유치를 위해 의회에 동의를 구하고 있다는 소문이돌았다.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의회에서는 주민들 의사와는 무관하게 유치신청 동의안을 만

장일치로 가결하고, 이것을 근거로 2010년 12월 31일 영덕군수는 핵발전소 유치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 후쿠시마에서는 이를 경고하기라도 하듯 대참사가 일어났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평소 국가나 핵발전론자들은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날 가능성은 거의 0%이며, 사고가 나도 모든 상황에 대한 대처가 가능한 안전한 에너지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의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소식이 날마다 이어지고 있었다. 앞으로 핵발전소가 들어올지 모르는 영덕주민들은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게 되었지만, 정작 입 밖으로 꺼내어 말할 수 없었다. 지난 10여 년간 3차례의 핵폐기장 반대의 경험이 남긴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우리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덕 핵폐기장 유치 반대운동의 선봉에 선 다수가 시위로 인해 재판장에 서고, 거금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식당을 운영하던 주민은 불매 종용으로 식당을 폐업하고 고향을 떠났다. 고향을 찾은 젊은이들은 새로운 지역사회를 꿈꾸었지만, 몇 차례 핵폐기장 반대에 동참하고는 지역발전에 저해되었다는 오명을 안은 채 도시로 떠났다. 농사를짓던 농민은 각종 인허가를 받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또 다른 농민은 현재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2011년 6월 14일, 영덕의 주민들은 영덕핵발전소 유치백지화 투쟁위원회 발족식을 준비했다. 이 행사를 위해 현수막을 제작하던 지역의 광고물품 제작사가 행사 전날 울먹이며 전화해서 추가의 광고물을 제작해 줄수 없다고 했다. 앞으로 살기가 조금 피곤할 거라는 전화를 받고, 밥벌이가 끊겨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지금도 광고물 제작은 물론 현수막을 거는 것도 불가능하다.
 신문보급소에서는 삽지행위가 군청에 발각되면 바로 가게를 닫아야 한다며 거절했다. 지난 핵폐기장 반대운동 때 나섰다가 밥줄이 끊길 뻔했단다. 결국 1개 신문지국은 거절당하고, 1개 지국은 군청에 넣지 않는 조건으로 겨우 수락했다. 포스터는 군청에서‘ 불법부착물’이라며 직접 철거했고, 행사장에서는 군청 직원이 주민을 가장해 사진을 찍어 신원을 파악했다. 주민들은행사장을 떠나거나 수건과 모자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행사장을 지켰고, 행진에는 본 대열에 서지도 못했다.
  2011년 12월 23일 신규핵발전소 후보지 선정 발표가 있던날, 대책위에 걸려온 전화에서는 지역주민임을 밝히며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고백을 했다. “더 이상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숨죽여 자신의 울분을 토해내고 있었다.
 정부에서는 신규 원전 후보적지의 조건으로 ‘인구가 적고 학력 수준이 낮으며 대도시에서먼 곳’을 꼽고 있다.‘ 적은 인구에 학력수준이 낮고 대도시에서 가장 먼’ 이곳에도, 사람이 살고 존중받아 마땅한 국민의 권리와 인권이 있다. 그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천부적 권리’가 아닌가?
  대도시의 소비위주의 에너지정책에 지역이 희생양이 되고, 지역갈등으로 민심이 파탄나는 것에 우리모두가 책임의식을 가져야 마땅하다. 그리고 세계가 버리고 있는 사양사업인 핵산업의 지속으로 지역갈등이 발생하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

□영덕 핵폐기장 반대운동의 역사□

●1989년 영덕 핵폐기장 반대운동
우리나라 최초 핵폐기장 계획 수립, 최초의 핵폐기장 반대운동
면단위 집회에서 3천여명의 주민 참가, 국도 점거 등 격렬한 반대운동

●2003년 영덕 핵폐기장 반대운동
2003년, 제252차 원자력위원회, 핵폐기장 후보지로 영덕 등 4개 지역 선정
영덕 등 주민들의 적극적인 반대운동, 청와대 앞 단식농성 등 전개

●2005년 삼척, 영덕 핵폐기장 반대운동
제253차 원자력위원회 중·저준위 핵폐기물 분리
삼척, 영덕 등 4개 지역 유치 반대운동


2012년 1월 18일 수요일 2면 기사
박혜령 준비위원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