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의 탈핵도서 순례 >

인간과 과학의 본성에서 찾는 자멸의 그림자

파스칼 크로시, 세슘137(현실문화, 2013)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방사성 동위원소 중 하나인 세슘137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가장 많이 언급되는 핵종이다.

바륨137로 붕괴하면서 감마선을 방출하는데, 이 감마선이 방사선 요법에도 쓰이지만 당연히 생명체에는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 1986년의 체르노빌 사고 때에도 유럽 전역으로 퍼진 세슘 원소가 검출되었고, 영국의 유제품까지 리콜 사태를 낳을 정도였다.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스의 수십 만 어린이들에게 발생한 방사능 관련 질병도 이 세슘의 영향이었다. 세슘137의 반감기는 30.17년으로, 자연 상태에 발견되는 모든 세슘1371940년대부터 실시한 핵실험들과 체르노빌 사고 등에서 인공적으로 방출된 것이다. 물론 세슘은 다른 핵종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색깔도 냄새도 소리도 내지 않는다.

프랑스 작가 파스칼 크로시의 그래픽 노블 세슘137에는 정작 세슘 원소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나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낸, 그리고 지금도 보이지 않게 우리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상징 기호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세슘을 만들어낸 것도 그것에 의해 피해를 입는 것도 선인과 악인, 영웅과 범인들로 구성된 지구상의 인간들이었다. 하지만 그 행위들이 얼마나 엄청난 결과를 낳을 것인지를 우리 인간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때문에 파스칼 크로시는 방사능의 비극이 아우슈비츠의 유대인 수용소를 만든 광기어린 본성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히틀러와 그의 권력, 그의 투쟁을 함께 만든 사람들, 학살을 수행한 병사들 모두 어떤 예외적인 일탈을 저지른 게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우라늄과 플루토늄 폭탄을 투하했던 조종사도, 자신의 행위는 전쟁 중에 당연한 작전 수행의 일부였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고자 모여든 군중들이나 마이클 잭슨의 공연에 환호하는 청중들은 닮은꼴로 그려진다. 조작되고 포장된 선별된 정보를 접하며 자라는 이들은 관광코스 상품이 된 체르노빌의 풍경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혼돈과 야만은 뉴욕의 9·11 테러와 겹쳐져 재현된다. 납치된 비행기가 무역센터 쌍둥이빌딩으로 돌진하던 순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자유의 여신상에서 작가는 1968년 영화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의 마지막 장면에서 조우한 파괴된 자유의 여신상을 떠올린다. 주인공 찰턴 헤스턴이 결국 바보같은 인간들이 핵전쟁으로 모든 것을 망쳤다고 절규할 때, 인간과 과학의 본성에는 자멸의 그림자가 깔려있는 게 아닌가 회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이러한 한 가지의 방향뿐일까? 때문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숙명론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걸까? 작가의 메시지는 오히려 반대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작가가 아우슈비츠와 히로시마, 체르노빌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기억과 반성의 주문이기 때문이다. 기억과 반성은 인간이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는 출발점이다. 그리고 인간을 파괴하는 시도와 인간을 구원하는 시도 모두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인간의 본성과 역사의 방향은 여전히 우리의 선택과 실천에 따라 열려있다는 말일 테다.

탈핵의 한걸음 한걸음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발행일 : 2014. 3.8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