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에 빠져버린,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재탕, 삼탕 토론대표성까지 결여된 공론화 프로그램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출범한지 벌써 10개월이 지났다. 출범식 이전부터 시민사회단체와 박근혜 정부는 공론화위원회 위상과 구성을 둘러싼 논쟁을 펼쳤다. 결국 시민사회단체 추천 위원 2명이 공론화위원회 출범식 날 사퇴하면서 시민사회단체는 공론화위원회를 보이콧한 이후 10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그 사이 반쪽짜리공론화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 논의 과정에 대한 해외 연수, 공론화를 위한 실행계획 발표 등을 진행했고, 6·4 지방선거가 끝난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토론회, 간담회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공론화 프로그램이 진행되면 될수록,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제대로 되고 있는 지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언론을 통해 재탕, 삼탕식 토론’, ‘일방적 발표와 질의응답같은 직접적인 비판이 나오는가하면, 지자체 추천을 받아 공론화위원으로 선임된 5명 중 3명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낙선하면서 지역대표성을 담보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 역시 함께 제기되고 있다.

또한 대학생 토론 프로그램의 경우, 발표자가 아닌 단순 참가자에게도 3만원 상당의 도서상품권과 스마트폰 터치펜을 주는 등 과도한 사례를 하고 있어, “사실상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비판까지 쏟아지고 있다.

 

 

<사진 설명, 지난 8월 20일(수) 오전 국회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과 생태지평연구소 등은 최근까지 진행된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활동을 비판적으로 점검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사진 윤종호 제공>

스스로 함정에 빠져버렸다!

현재 진행 중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는 영국에서 진행되었던 프로그램을 기본 모형으로 하여 짜여진 것이다. 2007년 국가에너지위원회에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 논의가 진행되었다. 당시 필자를 포함하여 참여했던 위원들은 좋은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토론문화가 익숙하지 않고, 한국의 관료문화와 결합할 경우 함정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즉 프로그램의 이름은 공론화프로그램인데, 사실은 기존 토론회와 별반 다르지 않게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공론화란 단순히 일반 시민들에게 의견을 묻는 여론조사나 설문조사와 달리, 해당 시민에게 다양한 선택사항과 그것을 선택했을 때 어떤 결과가 만들어지는 지를 알려주는 등 학습을 먼저 진행한 이후 토론에 임하는 숙의(熟議)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기술적인 영역에서는 기술자들이 모여 토론을 진행하지만, 최종적인 판단은 기술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현재 토론에 참여하지 못하지만 토론결과에 영향을 받게 될 미래세대를 충분히 고려한 토론이 진행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아주 간단한 결과 하나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1번의 이벤트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과정에 참여를 유도함으로서 학습과 고민을 진전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구성에서부터 현안 도출까지 계속 삐거덕!

공론화위원회의 한계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1월 실행계획 발표를 통해 올 8월까지 현안 도출 완료, 10월까지 관리방안 평가, 12월까지 공론화 보고서 제출 완료 등의 일정을 밝힌 바 있다. 다시 말해 현재 사용후핵연료를 둘러싼 현안을 도출하고 있는 중이다. 즉 앞서 이야기한 토론회, 설명회 역시 이 현안도출을 위한 일련의 과정이다.

하지만 실행계획에서 공론화위원회는 수차례 진행되는 대중 토론회와 타운홀 미팅 등 프로그램에서 진행과정에서 제출된 이야기를 어떻게 현안 도출목록에 담을 것인지 밝히지 않았다. 전문가검토 그룹이라는 이름의 별도 위원회를 통해 문서를 전달받는 것으로만 계획을 잡고 있다. 필요한 현안 도출 과제는 소수의 전문가를 통해 받고, 대중적인 프로그램은 보여주기 식으로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렇게 받은 전문가검토 그룹의 의견서조차, 현재 사용후핵연료를 둘러싼 현안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의 핵심인 사용후핵연료의 양에 대해, 전문가검토 그룹 보고서는 “2016년 포화될 가능성이 있으나, 조밀 저장시 2024년까지 저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한발 물러선 입장을 내고 있다. 그간 정부와 한수원은 2016년에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고가 포화될 것이라며 시급히 대책을 세울 것을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와 한수원 내부에서조차 2024년 포화설이 나오면서 혼란은 가중되어 버렸고, 현재는 임시저장고 포화시점이 2016년인지, 2024년인지조차 애매한 상황이 돼버렸다.

 

공론화,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는 결단을!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공론화프로그램은 정해진 결론을 향해 달려가는 프로그램이 아니다.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며, 그 속에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여 설사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결과가 갖고 있는 의미와 원칙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 공론화프로그램의 핵심이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는 공론화프로그램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어떤 사업을 진행하고, 그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은 쉽다. 올해 공론화위원회가 배정받은 40여억원의 엄청난 예산으로 훌륭한(?) 보고서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론화 프로그램은 그런 종이 조각을 만들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정부는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공론화위원회의 공론화 원칙 중 하나인 회귀성원칙을 사용해야 한다. 회귀성이란 설사 의사결정이 모두 끝나고 실행단계에 있다 할지라도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었을 때, 그것을 다시 원점으로 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공론화 프로그램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 중 하나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모두가 회귀성 원칙에 동의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공론화위원회가 용기를 갖고 그 위상과 구성, 실행계획 등을 다시 처음부터 논의하는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한다.

 

발행일 : 2014.9.1

Posted by 비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