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주기적이다시피 된 한반도의 전쟁위기 소동을 얼마 전 또 한 번 겪은 다음이지만, 전후 세대에게 전쟁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감각을 주문하는 것은 무리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사시 기꺼이 참전하겠다는 다짐이나, 이 기회에 끝을 보자는 식의 말이 오가는 것도 그런 전쟁의 추상화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컨대 <라이언 일병 구하기>같은 영화만 해도 전쟁이 결코 자신은 물론 누구에게도 권하거나 강요할 게 못되는 끝없는 지옥도라는 점을 생생히 보여준다. 이 역시도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되 그저 스크린 너머의 볼거리라 생각하고 말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1945 히로시마는 마음 약한 독자라면 쉬이 읽어내기 어려운 그런 지옥도를 보여준다. 194586일 아침에 히로시마에서 갑작스레 겪게 된 정체모를 섬광과 폭풍, 뒤이은 화재, 굵은 비, 바로 옆에서 죽어가는 수만 명의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현실이었다. 히로시마 사람들은 이 엄청난 악몽이 대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이해할 길이 없었다. 거꾸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연이어 투하된 것이 원자탄이었다는 보도가 나온 뒤에도 외부의 사람들은 히로시마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미국의 언론인 존 허시는 주간지 <뉴요커>로부터 원폭 1년 후 특집 기사를 요청받고 직접 히로시마를 찾기로 마음먹고, 19463개월간 현지 취재를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났다. 이 책은 존 허시가 만난 이들 중, 나중에 히바쿠샤(피폭자)’라고 불리게 되는 여섯 생존자의 경험과 이후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그들은 정말 운 좋게도 당일의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그 후에 겪었던 고난과 아픔은 수 만 명의 피폭자들을 전형적으로 대변한다.

 

흑백 사진 속의 버섯구름과 원폭돔(뼈대만 남은 산업장려관 건물)으로 추상적으로 알고 있는 히로시마의 핵폭탄은 실제로는 그날 그 현장의 악몽과 폐허일뿐 아니라 방사능 화상과 평생을 안고 가야 했던, 그리고 후세들까지도 고통으로 몰아넣은 원자병이기도 했다.

 

이 책은 1946년에 바로 출간되어 큰 반향을 불러왔지만, 1985년의 개정판을 통해 비로소 더욱 온전한 가치를 갖게 된 것 같다. 원폭 투하 후 40년 만에 허시가 히로시마를 다시 찾아 그 사람들의 뒷이야기를 모아냈기 때문이다. 누구는 경제적으로 더 여유가 있거나 좋은 삶의 기회를 갖기도 했지만 여섯 명 모두 고단한 삶을 살았다.

 

일본 정부와 국제 사회가 이들 피폭자의 존재에 관심을 갖고 지원에 나선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다행히 몸과 마음의 안정을 찾은 다음에도 그날의 공포와 원자병의 후유증이 문득 문득 그들을 엄습했다. 그리고 그들이 아픔을 끌어안고 스스로와 주변을 돌보려고 애쓰는 동안에도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인도는 핵폭탄 개발과 실험을 계속했다.

 

누군가는 이 모든 비극은 그저 핵폭탄으로 초래된 것일 뿐, 핵발전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핵폭탄 제조를 위해 우라늄을 태우는 시설로부터 핵발전소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차치하고라도, 인간이 만들어낸 방사능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또 지금도 충분히 알지 못하는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라도 히로시마를 제대로 돌아볼 이유는 충분하다.

 

이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4만 명에 이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조선인 피폭 사망자들, 그리고 김형률 씨 같은 원폭 2의 이야기도 아른거린다.

 

 

 

김현우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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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