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평화, 해외2015.11.08 12:10

91() 일본에서 부산항과 인천공항으로 팔순의 두 일본 탈핵 활동가가 들어왔다. ‘원불교 개교 100주년을 맞아 원불교환경연대가 마련한 탈핵할매가 간다행사에 함께 하기 위해서다. 두 일본 탈핵 활동가는 핵발전소 필요없다! 시모노세키 모임대표 사와무라 가즈요 씨와 아동탈피폭모임공동대표 미토 기요코 씨로, 99()까지 한국 지역 탈핵활동가들과 만나 교류하며 탈핵토크콘서트를 열고 여러 매체와 인터뷰도 진행했다.

두 분의 탈핵할매들은, 신규핵발전소 예정지인 삼척과 영덕에서는 지역주민들과 승리를 확신하는 용기와 우정을 나눴고, 부안에서는 역전의 용사들과 격렬했던 지난 투쟁의 현장을 거닐며 추억을 되새겼다. 영광에서는 원불교 교무들이 주도하는 22km를 걷는 146차 생명평화 탈핵순례에도 참여하고, 20년 전 동지들을 만나 서로의 건재를 기뻐했다. 귀국 전야는 서울광장에서 생일케익과 떡과 노래, 메시지로 두 분의 팔순잔치를 열고, 한겨레중고에서는 다가올 통일을 얘기하고, 하자학교에서는 춤과 합주로 열렬한 환대를 받아 흥분되고 감격스러운 시간이었다. 녹색당 거리집회에서는 당당함을, 반핵 현장과 대안학교 등에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주고받는 감동에 탄성을 연발하는 행복한 일정이었다.

다만 부안 위도에서 핵폐기장 싸움의 한 영웅이던 서대석 씨가 돌아가고 안 계셔 슬픔을 맛보았다. 1년 전 주인 잃은 빈 집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12년 전 핵폐기장 예정지 주변에서 따와 만든 감국차라며 건네던 모습과 방 안 가득 퍼지던 국향의 기억은 아직 생생하건만, 세 번째 만남을 기뻐해 줄 주인만 없었다. 1년 늦은 방문을 한탄하며 당시 예정지를 걸으면서, 만가인 냥 아리랑을 부르고 백만송이 장미도 개사해 물러가라 핵발전소를 불렀다. 영광핵발전소 온배수와 새만금 제방 건설로 어장은 크게 망가졌다지만 풍광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맑아, 위도에 이사 오고 싶다던 예전 미토 씨 말씀이 떠올랐다.

 

사와무라 할매, 38년 일관되게 탈핵운동 전개해

공부 잘하고 운동 잘했던 사와무라 씨는 고교 졸업 후 은행에서 일하면서 세상의 모순에 눈떴다. 남편과 연애시절부터 주로 나눈 얘기는 정치문제였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실내 모임에만 다녔으나, 결혼 7년 만에 태어난 아기를 본 순간 전쟁 없고, 차별 없고, 위험하지 않는 세상을 물려줘야겠다는 절박감이 들어 야외 집회장이든 핵발전소 반대 현장이든 가리지 않고 다니기 시작했다.

사는 곳은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 일본 초대총리인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하여 아베 신조 현 총리까지 극우 정치가를 많이 배출한 야마구치현, 일제시대 시모노세키는 대륙침략의 관문이자 침탈 재화로 번성한 항구도시. 귀국이 어려워진 재일동포들이 많이 사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야마구치에서 핵발전소를 세 번이나 저지하고, 재일동포와는 남북 국적 가리지 않고 친하게 지낸다.

체르노빌 아이들 구호활동도 펼치며 체르노빌에도 세 번이나 다녀왔다. 1995년 영광과 시모노세키에서 한·일 탈핵교류를 시작한 이래 20년 동안 서른 번도 넘게 방한할 만큼, 핵문제가 있는 곳이면 지역도 국경도 초월하여 응원하고 연대하며 자기 삶의 현장이라 여겼다. 9일 동안 가장 많이들은 얘기는 어쩜, 그렇게 오랫동안 반핵운동을 했느냐였다. 정작 본인은 싸우다 보니 38년이 흘렀고, (불의와) 싸우는 것은 즐거운 일이라며, “오래 싸운 것은 대수롭지 않다고 말했다.

핵발전소 건설 계획이 나오자 직감적으로 핵폭탄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고, 공부를 하면서는 핵발전소는 절대 안 된다는 확신으로 보수적인 야마구치 지역에서 모두 막아냈다. 후쿠시마사고 전까지 일본에 54기나 들어섰지만, 막아낸 핵발전소가 훨씬 많고 현재도 탈핵의 역사를 만들고 있는 사와무라 씨는 특히 영덕을 많이 도와주라고 부탁하고 가셨다. 또 변산공동체 대표한테는 아이들 일본수학여행(시모노세키에서 히로시마까지 혼슈 남단) 지원을 약속했다. “권력자가 뭐라 하건, 인민끼리는 사이좋게 지내자고 늘 강조하신다.

 

미토 할매, 극적인 가족사에도 지금이 탈핵운동 전성기

남편이 살아 있으면 후쿠시마사고 현실에 얼마나 슬퍼하고, 물리학자로서 죄스러워할 지 아플 만큼 잘 안다고 했다. 물리학도 대학원생 쌍둥이 아들과 남편은 1986년 겨울산에서 핵마피아 집단에 살해당했다. 핵과 인류는 공존할 수 없다고, 핵발전소를 멈추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호소하고 다니는 물리학자 남편한테 협박장이 계속 날아왔지만, 그는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체르노빌 핵발전소사고 후 일본에 비등하는 탈핵요구가 부담스러운 판에 일본원자력자료정보실을 떠받치는 그가 눈엣가시였으리라.

탈핵을 염원하던 가족이 자신 속에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증명이 되기 위해 활동한다고 했다. 핵발전소 최대 밀집지 후쿠이현 인근 오사카에 살면서 오오이핵발전소 운전정지 소송에도 승소하고, 다카하마핵발전소 운전정지 가처분 소송에 승소하여 재가동 1순위인 핵발전소 가동을 막았다. 가처분으로 핵반응로(=원자로) 운전금지 결정은 최초였다. 가처분 소송이라 결론은 빨리 나지만, 본소송에도 이겨야 한다. 지면 원고단 9명의 재산을 모두 잃는 위험한 소송이다.

2순위인 센다이핵발전소는 일본 큐슈 남단 가고시마현에 있다. 차비만 수십만원인 곳까지 달려갔지만, 일주일 만에 해체 당했다. 저항했지만 센다이 재가동을 막지 못한 분함을 토로하던 팔순의 미토 씨. 실력저지로 막을 수 있으면 제일 빠르고 좋지만, 느리고 더뎌도 소송에서 승리하면 다른 지역에까지 확실한 근거를 제공하고 반핵여론 확산에 큰 도움이 된다며 여러 방식으로 싸워야 한단다.

일본은 사고 후 방사능 허용기준치가 급등했는데, 식수는 무려 25만 배나 올렸다 한다. ‘아동탈피폭재판모임에서는 후쿠시마 오염지역에서 피폭을 감수하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안전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소송을 하고 있다.

 

탈핵정보연구소, 반권력·반자본의 철학으로 탈핵을 실천하는 두 할매 영화 등 준비

엄마로서 인간으로서 탈핵을 자기 문제로 풀어내는 두 탈핵 할매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탈핵 감성지수를 높여 주리라. 원불교환경연대 탈핵정보연구소는 반권력, 반자본의 철학으로 탈핵을 실천하면서도 유쾌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퍼뜨리는 두 분 사연을 감동적으로 담아낼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 또 이번 행사 후속프로그램으로 후쿠시마 아이들의 피폭후유증을 저감하기 위한 교류 행사도 계획하고 있다.

지역에서 분투하시는 분들, 열렬하게 환대해주고 열심히 들어준 하자학생들과 히옥스 선생, 18년 만에 만나 기쁨 준 녹색전환연구소 김현 씨, 생일축하 노래 불러주신 분들, 귀국 날 기어이 아침을 사주신 김영희 변호사, 청정 해안가 예쁜 집에 재워주고, 먹여주고, 해먹 타게 해주고 8일간의 팔순잔치 아이디어를 주고, 춤 춰주고, 웃음 주고, 정 팍팍 준 삼척평화 이옥분 씨, 기획과 일정을 함께하며 두 할매가 무심히 하는 말도 훌륭한 어록으로 주워 담듯 찬탄하던 원불교환경연대 이태옥 처장, 이번 여정은 팔순에 받는 선물 같다며 소녀처럼 생글거리며 날마다 눈빛을 빛내던 두 분과 아직은 대형 핵참사가 없는 이 땅과 하늘에 감사드린다.

 

 

 

 

탈핵신문 2015년 10월호

김복녀(원불교환경연대 탈핵정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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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