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2015.12.19 01:04

인터뷰 약속을 잡은 날 아침 최경숙 씨로부터 아이가 아파서 학교를 가지 못해 인터뷰를 연기해야겠다는 문자가 왔다. 곧이어 인터뷰를 다시 잡긴 했으나 아이가 괜찮은가 싶어 아이의 상황부터 물었다.

 

“남편이 미국 출장을 갔다가 먹을 걸 잔뜩 사왔어요. 온갖 첨가물이 잔뜩 들어간 육포랑 간식거리들을. 그래도 아빠가 사온 건데 먹지 말라고 하기가 좀 그래서 먹으라고 허락해줬더니, 제가 안보는 사이에 엄청 먹었나봐요. 막내가 두드러기가 돋았는데 일요일이라 병원도 못가고… 애 셋 키우다보면 반 의사 되거든요. 그래서 일단 집에 있는 항히스타민제 잘라서 좀 먹이고 어제 병원 갔다 왔네요.”

 

일교차가 심한 날씨에 감기인가 싶었는데 먹거리 문제였다. 원래부터 아이가 예민한 체질인가 물었더니 그런 건 아니라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다 아토피가 있다고 보면 되요. 남편하고 시댁 쪽이 좀 알레르기 체질이기도 하고 저도 비염이 좀 있고. 그래서 항상 조심한다고 하는데, 그날은 내가 뭐한다고 다른데 정신이 팔려있었는지….” 그러니까 후쿠시마 사고를 보고 친정어머니를 통해 서해안의 소금을 쟁여놓은 것도, 평소 먹거리가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이었던 거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사고가 발생하고 난 몇 달 뒤 방사능오염 문제에 경각심을 느끼게 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에 개설된 차일드세이브 카페. 이들의 우려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해 11월 한 회원이 서울 월계동 아스팔트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을 검출하고, 같은 달 인천 영종도 초등학교 운동장의 모래바닥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을 검출하면서 이들 활동은 그야말로 불타올랐다.

 

“저는 처음부터 그렇게 열심히 했던 건 아니었어요. 그냥 개인적으로 음식 조심하는 수준이다가, 처음 카페매니저 하시던 분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게 안타깝기도 하고 그분이 매니저를 계속하시기가 어려운 상황이라 어떻게 넘겨받게 된 게 지금까지 왔네요.” 카페에 소개된 활동상황을 보면 회비도 받지 않고 순수하게 자발적으로 굴러가는 온라인기반모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길지 않은 기간 동안 굵직한 일들을 많이 치러냈다. 각종 소송에 참여했고, 꾸준히 우리 일상에 숨어있는 방사능을 찾아냈으며, 강연회와 기자회견, 토론회 등을 치렀다. 그러다가 명예훼손으로 회원 한 명이 피소되는 일까지 겪었다. 분유에서 검출된 미량의 세슘이 발단이었다.

 

“저희 회원이 이걸 검출했는데 기준치에는 훨씬 못 미쳤어요. 그래도 아기가 먹는 분유인데, 검출되었다는 자체가 충격이잖아요. 그래서 환경단체에 제보를 했고, 거기서도 고민을 많이 하다가, 결국 발표를 했는데 해당 분유회사에서 명예훼손과 재산상 손해로 소송을 건 거에요. 그래서 1년 동안 소송당한 회원하고 같이 논문 보면서 공부도 엄청 하고 그랬어요.” 불과 활동을 시작한 지 1년 안팎 정도가 지난 뒤에 겪은 일이다. 직장생활의 경험도 없고, 결혼해서 세 아이를 키우던 주부가 장장 1년 동안 대기업을 상대로 법정에서 맞섰다니…. 하지만 역시 인터뷰 내내 활기있고 거침없던 입담도 소송결과에 대한 대목에 이르자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분위기 전환을 위해 차일드세이브 활동에 대한 자랑을 부탁했다.

 

“이번에 서울시에서 친환경급식가이드라인을 제정한다더라구요. 그중에서 방사능기준치를 국가기준(100Bq, 편집자 주)과는 상관없이 요오드 15베크렐(Bq), 세슘 5베크렐로 낮춰서 정하고, 그동안 방사능이 주로 검출됐던 임연수, 명태 이런 건 제외하는 쪽으로 한다더라구요. 물론 저희만 노력한 건 아니지만 꾸준히 5년간 토론회 나가서 의견 제시하고 민원 넣고 한 것들이 이런 결실로 맺어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서울 강서·양천구 쪽은 어린이집에 민원을 꾸준히 넣었더니 문제되는 식재료들이 모두 다 빠졌고, 노원구 쪽은 저희 회원들이랑 구의회의원이랑 같이 조례를 만든 것도 작지만 소중한 결실들이죠.”

 

그렇다면 더 많은 성과를 위해 짜임새 있는 환경단체를 꾸리는 건 어떤가 의향을 여쭈니, 이미 수차례 고민하기라도 한 듯 재깍 분명한 소신을 밝혔다. 사무실 임대료와 운영비 등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에서부터, 운동단체가 제도화되면서 겪는 한계들까지. 차라리 지금처럼 유연한 상태로 “기존 단체와 유기적인 결합과 연대”를 하는 것이 큰 틀에서 보았을 때 더 도움이 된다는 판단인 것이다. 운동단체들이 고질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와 한계를 꿰뚫어보기에 5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짧지 않았던 거다. 그리고 운동의 틈새영역에서 결코 작지 않은 성과를 내고 있는 차일드세이브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역시 정확하고 냉정하게 의식하고 있었다.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던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 내에도 우리를 예민한 건강염려증 환자쯤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보세요, 저희는 어쩌면 새로운 운동의 형태를 보여주는 걸 수도 있어요. 조직도, 실체도 없으면서 필요할 때 돈을 내고 자발적으로 움직이잖아요. 그러면서 기존의 환경단체들이 하기 어려운 부분들을 확장시키기도 하고 대중화시키기도 하고. 게다가 아이들하고 같이 움직이니까 그림이 좋아서 시위에 나와주기를 바라기도 해요. 그러면서 아이들의 안전과 관련한 저희들의 특수한 감각을 뜨악한 시선으로만 바라보는 건 좀 이기적이죠. 그거야말로 진보의 성장을 가로막는 거라고 생각해요.”

 

행사 참가자가 발표자보다 적어서 민망한 토론회나 설명회, 몇몇 담당 활동가들만 앙상하게 서있는 기자회견 같은 자리에 적게는 십수명에서부터 많게는 수십명에 이르기까지 많은 회원들을 동원할 수 있는 막강한 조직력은, 이용하면서 정작 그 조직력이 어디서 오는지 깊이 헤아리지 않는 연대단체나 활동가에 대한 일침이다. 아무리 기준치 이하라 해도 물잔에 농약이 섞여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 물을 마실 수 없듯 안전에 대한 감각은 과학으로, 논리로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양한 색깔의 크레파스가 하나하나 칠해졌을 때는 형형색색 보기좋은 빛깔을 내다가도, 결국 다 합쳐지면 검은색이 되고 말 듯 방사능도 이것저것 노출되다보면 우리 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차일드세이브 카페를 통해 만난 분들 중에 아이가 아픈 경우가 참 많아요. 육체적으로도 그렇지만 자폐나 발달장애 같은 쪽으로도요.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일단 내가 뭘 잘못했나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결국 이건 우리에겐 생존의 문제인데 예민한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하지만 그래도 답답할 때는 있다. 회원수가 2만명이 넘는 카페의 운영자이고보니 다양한 사람들과 질문들을 상대해야 하는 게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토론회 같은데 가면 전문가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애정없이 가르치려고 드는 전문가들에게 정말 화가 많이 나요. 그래서 저 스스로도 조심하려고는 하는데 답답할 때가 많네요.” 실제로 카페에 보면 ‘정답’을 요구하는 태도에 대한 단호한 공지 글을 볼 수 있다. 방사능안전 하나에만 관심을 두는 것도 아니고, GMO(유전자조작식품, 편집자 주)를 비롯한 전반적인 먹거리 안전문제와 기후변화까지 두루두루 관심영역이 확장되고 있고, 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처신은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하나의 지침을 마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야박해보일 수 있는 어조로 쓴 글인데도 댓글은 모두 우호적이다. 수년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활동하면서 신뢰를 쌓아왔는지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지금 다시 선택할 수 있다면, 아이를 낳지 않겠는가는 질문에 단칼에 그렇다고 답하면서도, 활동을 통해 얻은 개인적인 성과로 아이들이 엄마를 존경하게 되었다는 점을 꼽는 최경숙 씨. 아무리 솔직하고 거침없는 그녀지만, 아무래도 아이를 낳지 않았으리라는 대답에 대해서만은 그녀의 솔직함을 의심해봐야 할 것 같다.

 

 

 

 

2015년 12월호 (제37호)

황성원(에너지정의행동 회원,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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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