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만 없었더라면! 

 

방사능이 오염시킨 / 작은 무논 / 전답을 버려두고 / 도망가는 사람들을 / 보았던 그날부터 / 서 있네”.

 

 

 

이 책에 나오는 허수아비라는 노래의 가사인데, 포크밴드 이와키 피라미 학원의 곡이다. 이 밴드의 주인공 구보키 씨는 후쿠시마현 이와키 시에서 살아오다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사고를 경험하고 이런 노래들을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로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여론을 조성하고 후쿠시마 주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런 음악인, 농민, 어민, 목축업자,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사진가, 주부, 학생들 94명의 목소리가 있다. 지금도 후쿠시마현 주민들 중 12만 명 이상이 피난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중 후쿠시마현 바깥으로 흩어져 사는 이들이 45천명이 넘는다고 하니, 그렇다면 훨씬 많은 직업과 처지, 목소리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피난민 12만 명의 이야기를 다 들어본다 하더라도 그들의 이야기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에서 거듭 확인되듯, 핵발전소 사고로 하루아침에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은 하나같이 원전만 없었더라면이라고 탄식하고, “원전 제로로 나아가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단지 대지진뿐이었다면 이렇게 오랜 기간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어렵더라도 후쿠시마 땅과 바다에서 무언가를 다시 일구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 그것이 가설주택에서 생활하는 심신의 고통보다 훨씬 큰 절망이며, 다른 재해와는 전혀 다른 핵발전 사고의 비극이다.

 

후쿠시마 사고와 이재민들을 다룬 책들이 여럿 나왔지만,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여러 모양의 삶과 생각들을 모아내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2011311일의 사고 이후 38개월간 <아카하타>에 연재된 인터뷰 기록을 연대기로 묶은 것인데, <아카하타>는 일본 공산당의 기관지로 출발한 신문이다. 일본 공산당이 핵발전소 사고 이후 벌여온 대민 활동을 홍보하고자 하는 의도도 읽히지만, 핵발전소 반대 입장을 견결히 고수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지자체 운동 중심의 생활정당이 된 공산당으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할 것이고 가장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좋았을 것이다.

 

94명의 목소리 하나하나가 가슴을 울리지만, 다시 바다로 나갈 날을 꿈꾸며 어구를 손질하는 어민들과 후쿠시마 특산품인 복숭아와 소를 다시 키울 수 있기를 염원하는 나이든 농민들의 이야기가 가장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방사능도 무섭지만 다른 지역 사람들의 냉대와 기약없는 미래 때문에 더욱 힘들어 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가해자의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도쿄전력과 핵발전 재개를 강행하는 아베 정권에게 가장 분노하고 있다. 그들은 대지진의 그날부터 이제까지 서로 격려하고 도우며, 이 책의 부제처럼 원전 제로를 향하는 사람들이 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 중 대다수가 후쿠시마현 내 59개 기초자치단체의 약 4천 명의 주민이 제기한 생업을 돌려줘, 지역을 돌려줘집단소송의 원고이기도 하다는 점도 특기할 일이다. 이 소송은 단지 보상이 아니라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에 원상복구탈핵을 요구하는 장구한 투쟁이다. 인터뷰마다 실린 사진의 표정들을 보면 이 사람들의 삶과 마음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김현우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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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