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없이 우아하게, 사이토 겐이치로, 티티, 2015

 

냉장고를 부탁해는 미덕이 있는 TV 프로그램이다. 냉장고 한 구석에 잊혀진 채 잠자고 있던 재료들을 불러내어 새로운 존재로 탄생시키면서 보는 즐거움을 주기도 하거니와 사람과 요리와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준다. 그러나 어느 집이든 냉장고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고, 그렇게 냉장고를 쓰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상식을 강화하기도 한다. 어쨌든 현대인은 냉장고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다른 많은 가전제품들과 함께.

 

그런데 냉장고 속의 재료들 처리를 부탁하는 대신 냉장고 자체를 버릴 궁리를 진지하게 한, 그리고 마침내 성공한 사람이 있다. 일본 <아사히 신문>의 기자이기도 한 사이토 겐이치로 씨는 각종 가전제품과 이별하면서도 우아하고 즐겁게 살게 된 몇 년 간의 모험담을 유머러스하게 들려준다.

 

그는 2011년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마침 후쿠시마의 고리야마시 지국에서 근무하다가 지진과 핵발전소사고의 참화를 직접 기록하고 전하면서 핵발전이 갖는 근본적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핵발전의 위험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정부와 전력회사는 무능하거나 거짓말을 일삼으며, 지역은 대도시를 위해 거듭 희생당했다. 그리고 자신 역시도 너무도 싸고 편하게 전기를 쓰며 살아왔다.

 

도쿄로 근무지를 옮긴 지은이는 휘황찬란한 거리의 불빛을 보고 후쿠시마사고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것 아닌가하고 한탄하며, 작지만 큰 개인적 결심을 하게 된다. 전기를 가급적 안 쓰고 살아보자는 것인데, ‘5암페어(A)’라는 최소 단위의 전력요금제 계약이 그 방법이 된다. 40암페어 기준 전력 계약을 5암페어로 바꾸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도쿄전력 상담직원은 10암페어 아래의 계약은 없다고 주장하다가 약관상 근거가 있음을 어렵사리 확인해준다. 차단기를 교체하러 온 직원은 5암페어로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고 염려하지만, 후쿠시마사고 이후 결심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응해준다.

 

이것은 모험담의 시작일 뿐이었다. 그날 저녁부터 지은이는 냉장고와 세탁기를 동시에 돌려도 되는지 마음을 졸이며 빨래를 하고, 차단기가 떨어지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환성을 지른다. 그러나 5암페어라는 전류량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합쳐서 500와트(W) 이상의 소비전력을 갖는 가전제품을 동시에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에어콘과 전기밥솥, 헤어드라이어는 하나만 해도 1000와트가 넘는다. 선풍기는 강하게 틀 때 0.6암페어이니 효자 중의 효자다. 그러나 청소기, 다코야키(문어빵) 구이틀, 전자레인지 이런 것들은 5암페어 계약에서는 쓸 수 없다. 지은이는 이런 못 쓰거나 안 쓰게 된 가전제품들을 집 한 구석에 모아 가전제품의 무덤을 만든다.

 

전력소비 측정기를 구입하면서 지은이의 실험은 과학적으로 진화한다. 각 가전제품의 소비전력을 여러 경우를 비교하며 측정하면서 지은이의 눈에는 전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전거 통근과 찬물 샤워, 뽁뽁이 단열과 조개탄 화로, 빗자루 청소와 프라이팬 요리의 재미를 깨닫게 된다. 나고야로 이사한 지은이는 이제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까지 도전하며 전력망으로부터의 자유와 자립으로 한발 더 나아간다. 미니 태양광 발전기를 베란다에 설치하여 건강 제1전력태양광발전소 소장으로 스스로 취임한 것이다.

 

탈핵에 가까이 가려면 실제로 전기를 덜 쓰면 되고, 그럴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다. 그러나 지은이는 그것이 혼자만의 혹독하거나 유별난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전기를 덜 쓰고도 우아하고 즐겁게 살기 위해, 그리고 그것이 많은 이들의 일상과 상식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 지은이는 우리 보다 조금 빨리 결행에 나섰다. 지진, 전기요금, 핵발전 이야기가 모두 나오는 이 책을 읽기에 지금처럼 맞춤인 때도 드물겠다.

 

 

탈핵신문 2016년 10월호 (제46호)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상임연구원, 인문사회서점 레드북스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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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