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2016.11.14 17:09

오는 1111일은 중앙정부와 영덕군이 국가사무라며 주민투표를 허용치 않아, 영덕지역 민간이 주도한 영덕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 1주년이다. 동일한 이유로 2년 전 삼척 핵발전소 유치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한 삼척시장을 직권남용등의 이유로 기소한 건에 대해, 지난 10월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의 무죄판결이 있었다. 또 올 초 부산 기장군 주민들은 핵발전소 인근 바닷물을 담수화하여 수돗물로 제공하겠다는 부산광역시를 상대로 민간주도의 해수담수화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기장군 주민들은 주민투표를 허용하지 않은 부산광역시를 상대로 청구인대표자 증명서 교부신청 거부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9월초 부산지방법원은 주민투표 대상이라는 판결을 통해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부산광역시는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일련의 핵발전소 관련 주민투표 및 연관 판결들을 지켜보며, 본지는 주민투표와 중앙정부 역할을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연구·실천해온 이기우 교수에게 원고를 청탁했다 편집자 주.

 

 

한국, 2004년 법 제정 이후 12년 동안 주민투표 8스위스 매년 10건 이상 주민투표 실시

2004년 주민투표법이 제정되어 시행된 이래 12년 동안 전국 243개의 광역 및 기초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된 주민투표가 겨우 8건에 불과하다. 이는 주민의 의사에 따라 지방의 문제를 해결하는 주민자치를 실현하기 위해 도입한 주민투표제도의 취지가 거의 실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미 실시된 8건의 주민투표도 거의 대부분이 시·군의 통합이나 폐지에 관한 것이거나 방폐장 유치 등 국가사무에 대한 것이고 중앙정부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 왔다. 순수한 자치사무에 대한 주민투표는 2건에 불과하다.

 

스위스에서는 매년 지방자치단체마다 10건 이상의 주민투표가 실시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주민투표법이 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투표가 거의 실시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주민투표가 정상적으로 실시되지 못하는 것은 주민투표법이 주민투표대상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주민투표의 실시요건을 까다롭게 정하고 있는 것에도 원인이 있지만,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주민투표에 대해서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도 큰 원인이 있다.

 

주민투표에 대한 중앙·지방정부의 부정적 태도, 지방자치 주체인 주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반헌정적인 발상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주민투표에 대해서 부정적 또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는 것은 지방자치의 주체인 주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고 이는 결국 자방자치 자체를 거부하는 반헌정적인 발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주민으로서는 주민의 의사를 실현하기 위하여 주민투표법에 근거하지 않는 사실상의 주민투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고, 이로 인하여 주민과 지방정부, 주민과 중앙정부의 갈등이 심화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갈등해소를 위한 제도적 장치인 주민투표제도를 부정적으로 운영하여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삼척시의 원전유치 신청철회에 관한 주민투표에 대해 행정자치부와 선거관리위원회는 원전건설이 국가사무이므로 유치신청이나 철회여부도 국가사무이고 주민투표의 대상이 아니라고 해서 삼척시장의 주민투표요청에도 불구하고 선거관리위원회가 주민투표 실시를 거부하였다. 영덕군에서는 원전유치 여부는 국가사무라는 이유로 주민투표청구인 대표자증명서교부를 거부하여 주민투표법상의 주민투표가 불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주민투표법상의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없게 된 주민들은 주민투표법에 근거하지 않은 사실상의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원전유치 반대의사를 명백히 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진주의료원 주민투표나 부산시의 해수담수화주민투표에서는 주민투표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지방정부가 서명을 받지 못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 법원이 재판을 통하여 주민투표의 대상이 된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원전 건설 여부는 국가사무삼척·영덕의 원전유치 신청·철회는 주민의사에 기초, 당연히 자치사무

원전의 건설여부는 국가사무이지만 지방정부가 주민을 대표하여 유치신청을 하는 것까지도 국가사무로 보는 것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삼척시나 영덕군의 원전유치 신청이나 그 철회는 국가의 의사가 아니라 주민의 의사에 기초한 삼척시와 영덕군의 의사결정이므로 당연히 자치사무라고 보아야 한다. 만약 지방정부의 원전유치 신청을 국가사무라고 한다면 국가가 지방정부에게 유치신청 여부를 지시할 수도 있다는 결과가 된다. 만약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의 지시에 따라 유치신청을 하거나 그 철회여부를 결정해야 된다면 이는 더 이상 지방정부의 의사가 아니라 중앙정부의 의사가 된다. 자가당착이다. 따라서 원전유치에 관한 지방정부의 입장을 결정하는 것은 당연히 지방정부의 자치사무라고 보아야 한다.

 

더구나 선거관리위원회가 주민투표를 관리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사무인 주민투표사무를 위임받아 수행하는 것이다. 수임자인 선거관리위원회는 위임자인 삼척시의 주민투표실시 요청을 따라야지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선거관리위원회가 주민투표의 실시를 거부한다면 삼척시가 직접 주민투표를 실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치사무인 주민투표를 지방정부가 자치적으로 실시하지 못하고 국가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실시하도록 한 것 자체가 세계에 유래가 없는 기형적인 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영덕군의 경우 주민들이 원전유치신청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준비하기 위해 대표자증명서 교부를 신청했다면 영덕군은 당연히 교부하여 주민투표의 실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것이 순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투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주민투표청구인 대표자증명서교부를 거부한 것은 결국 주민을 무시하고 주민의사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반자치적인 행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행 주민투표제도, 주민투표 대상과 개표 요건을 지나치게 제한주민투표법 개정 및 국민투표제도 개선 필요

지방자치란 주민의 의사에 따라 지방사무를 수행하는 정치원리이다. 주민의 의사를 무시한 지방업무의 수행은 더 이상 지방자치라고 할 수 없다. 원전의 설치나 방폐장의 설치 등 주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한 주민의 자결권은 법률의 규정 이전에 주민의 고유한 권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주민의 고유한 권리를 무시하여 주민투표를 거부하거나 방해하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는 지방자치를 보장한 헌법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된다.

 

현행 주민투표제도는 주민투표를 어렵게 만들고 그 대상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어서 지방자치의 주체인 주민의사의 실현을 억압하고 있다. 차제에 주민투표법을 개정하여 스위스처럼 주민투표에 대한 대상적인 제한을 전면적으로 폐지하고, 주민발의 요건도 대폭적으로 완화하고, 주민투표의 개표요건으로 1/3이상 투표를 필요로 하는 제한도 철폐하여 주민투표가 활성화되도록 하여야 한다. 한걸음 나아가 국가사무에 대한 국민투표도 국민의 발의로 실시할 수 있도록 국민투표제도를 개선하여 국민주권이 현실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탈핵신문 2016년 11월호 (제34호)

이기우(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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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sp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