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핵평화, 해외2019.04.20 12:00

∥스리마일 사고 40주년


1979년 3월 28일 아침. 미국 펜실베니아주 해리스버그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 리포터는 소방차와 경찰차가 스리마일 핵발전소 쪽으로 출동하는 것을 목격했다. 평소와 달리 핵발전소 냉각탑에선 수증기가 피어오르지 않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것을 직감한 리포터는 방송국에 이 사실을 알렸고, 오전 8시 25분께 라디오 방송을 통해 핵발전소 사고를 알리게 된다. 사고 발생 4시간 반이 지났지만, 사고 사실은 이렇게 우연히 알려지게 되었다.


1979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주의회 앞에서 벌어진 반핵시위 모습 사진 출처 :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


스리마일섬은 뉴욕, 펜실베이니아, 메릴랜드주에 걸쳐 흐르는 서스쿼해나 강 위에 있는 작은 섬이다. 섬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인 미들타운에서 3마일(약 4.8km)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스라마일섬에는 2개의 핵발전소가 있었는데, 사고가 일어난 스리마일 2호기는 1978년 12월 30일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사고가 일어난 날은 상업 운전을 시작한 지 89일째 되는 날이었다.


3월 28일 새벽 4시 밸브 이상

사고는 고장으로 시작되었다. 28일 새벽 4시쯤 핵발전소 2차 계통 냉각수 펌프가 고장 났다. 이에 따라 1차 계통 냉각수 온도와 압력이 올라갔는데, 이를 조절하는 밸브(PORV)가 자동으로 닫히지 않았다. 자동으로 닫혀야 할 밸브가 닫히지 않은 것도 문제였지만, 중앙제어실에서는 밸브가 열려 있는 상태라는 것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당시 중앙제어실의 계기판은 밸브가 열리거나 닫힌 것을 표기하는 것이 아니라, 밸브를 작동시키는 전기 신호만 표시했다. 설계상 결함이었다. 이후 중앙제어실에는 수백 개의 경고등이 켜졌고, 중앙제어실 근무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어떤 신호가 중요하고 그렇지 않은지 구분할 수도 없게 설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경고등 위에는‘수리 중’을 알리는 태그가 붙어 있어 신호 상태를 즉시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실수는 이어졌다. 냉각수 압력이 낮아지고 냉각수 보충이 이뤄지자 중앙제어실에서는 오히려 냉각수 공급을 중단시킨다. 중앙제어실에서는 냉각수가 부족하다는 것을 몰랐고, 교육과정에서 가압기에 냉각수가 완전히 채워지는 상태를 피하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원자로의 온도는 계속 높아졌고, 핵연료봉이 냉각수 밖으로 노출되면서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멜트다운(meltdown) 상태가 발생한 것이다. 고장과 설계결함, 인적실수, 사고 대비 교육 부족이 겹쳐 발생한 사고였다.


20만 명 모인 반핵시위

스리마일 핵발전소 사고는 미국 핵산업계에 엄청난 충격이었다. 사고 직전에 개봉한 ‘차이나 신드롬’의 내용이 핵발전소 사고 이후 모습과 대비되면서 스리마일 사고는 일파만파 퍼져 나간다. 제인 폰다와 마이클 더글러스 주연의 영화 ‘차이나 신드롬’은 핵발전소 사고를 취재하려는 기자와 이를 감추려는 당국자들의 갈등을 그린 영화였다. 영화처럼 스리마일 사고 직후 핵발전소 관계자가 상황을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말이 계속 바뀌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민들의 핵발전소에 대한 불신은 더욱 높아졌다.

스리마일 사고는 미국 반핵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 반핵운동은 스리마일 사고 이전에도 활발한 활동이 있었다. 1950-60년대 핵무기 반대 운동의 흐름은 지속적으로 이어졌고, 1970년대 중반 시브룩 핵발전소, 디아블로 핵발전소 건설 반대 운동이 폭넓게 진행되었다. 스리마일 사고를 계기로 반핵운동은 더욱 대중적으로 확대되었다. 스리마일 사고 직후인 1979년 9월, 뉴욕에서는 MUSE(Musicians United for Safe Energy)라는 그룹이 결성되어 5차례 반핵콘서트가 열렸는데, 마지막 날인 9월 23일에는 뉴욕 배터리파크에 20만 명이 모여서 대규모 시위와 콘서트를 벌이기도 했다.


아직 진행 중인 스리마일 사고의 유령

스리마일 핵발전소 사고의 영향은 지금도 논란 중이다. 미국 핵규제위원회(NRC)와 핵산업계는 방사성 물질의 누출량이 지역주민의 건강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이들은 지역의 암 환자 발생과 사망률 증가를 방사선 피폭과 연관시키지 않고, 사고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결론짓고 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은 사고 직후 충분한 역학조사가 진행되지 못했고, 별도의 조사를 통해 스리마일 사고와 암의 상관관계의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사고가 일어난 지 40주년이 되는 올해 3월 28일, 스리마일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은 스리마일 핵발전소 앞에서 집회를 진행했다. 그들의 구호는 “스리마일을 구제하지 마라!(No T.M.I. Bailout)!”.

스리마일 사고 직후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스리마일 1호기도 가동을 멈췄지만, 핵발전소 운영사는 계속 재가동을 추진했다. 결국 지역주민들과 여론의 반대에도 스리마일 1호기는 1985년 재가동되었다. 스리마일 1호기는 2009년 운영허가 심사도 통과해서 2034년까지 운영할 수 있다. 스리마일 1호기가 1974년 가동을 시작했으니, 60년 운영허가를 취득한 것이다. 하지만 스리마일 핵발전소를 소유하고 있는 엑셀론(Exelon)은 수익성이 계속 떨어진다는 이유로 올해 9월 스리마일 1호기를 폐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노후핵발전소가 천연가스나 재생에너지 발전소보다 경제성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민간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핵발전소를 가동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핵발전소 폐쇄 저지 움직임도

이에 펜실베니아 주의회는 일자리 보호를 위해 스리마일 핵발전소 폐쇄저지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공화당 출신 펜실베니아 주의회 라이언 오먼트 상원의원은 펜실베니아주 핵발전소 2기가 폐쇄되는 것을 막기 위한 법안을 발표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기존 주정부가 갖고 있던 대체에너지 포트폴리오 표준에 핵발전을 추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04년에 만들어진 이 법은 원래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에너지원을 지원하는 법이다. 그 법안이 통과된다면 연간 5억 달러(약 5694억 원)가 추가 지출되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 매달 가정용 전기요금에 1.53달러가 추가로 지출된다.

이런 법안이 제출되자, 스리마일 인근 지역주민들이 스리마일 핵발전소를 구제하지 말고 즉각 폐쇄하라는 시위를 했던 것이다. 핵발전소의 수명은 생각보다 길다. 사고로 안전성에 대한 신뢰가 깨진 상태에서 경제성마저 무너졌지만, 핵발전소가 살아남기를 원하는 이들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벌써 사고가 일어난지 40년이 흘렀지만, 모질게 살아남은 스리마일 핵발전소가 이제 백발이 된 당시 피해주민들을 줄기차게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

탈핵신문 2019년 4월호(65호 _ 복간준비3호)


Posted by 석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