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2019.05.13 08:19

∥영화로 만나는 탈핵


감독: 라이너 루트비크스Rainer Ludwigs  / 독일·우크라이나 / 2011년, 19분


체르노빌 핵발전소 인근 마을에서 자라난 레오니드는 소박한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경찰 공무원이다. 그러나 커다란 엔진 소리가 들린 밤이 지나고 그와 가족, 이웃들의 삶은 송두리째 바뀐다. 아이들이 들판에서 본 핵발전소는 맹렬한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수십 대의 버스가 이들을 태우러 도착하고 마을은 순식간에 비워진다. 레오니드도 경찰 무기고를 정리하여 마지막 차에 몸을 싣는다.

피난처에 도착한 레오니드는 병원 검진에서 높은 방사선량 피폭이라는 결과를 듣고, 아이를 가진 부인 역시 출산이 위험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레오니드는 핵발전소 사고 수습에 동원된 이들을 의미하는 ‘청산자’의 일원으로 다시 체르노빌에 투입된다. 사고 현지의 경험을 가진 공무원들이 몇 명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는 구토와 피로의 고통이 찾아왔고, 더 이상 회복될 수 없을 만큼 건강이 망가진 다음에야 다시 가족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둘째 아들이 태어나고 즐거움과 희망이 싹트지만 아이 역시 방사능 질환을 안고 살아간다. 하지만 자막이 흐르는 엔딩에서 해마다 꿋꿋하게 성장하는 아들의 사진들도 같이 흐르면서 영화는 생명과 삶의 희망을 공유하고자 한다.

굳이 장르로 구별하자면 레오니드 부부의 회고와 자료에 근거한 다큐멘터리지만, 영화의 구성은 매우 다채롭다. 사고 당시의 영상과 사진, 애니메이션, 스케치들이 화면에 아름답게 어우러지는데, 그만큼 주인공 가족의 이야기는 아프게 다가온다. 겨우 19분이 안 되는 분량에 한 개인과 가족이 겪은 비극을 담담히 담으면서 체르노빌 사고의 압도적인 무게감을 함께 실어 낸 작품이다.

감독은 체르노빌의 어린이들을 병원에서 만나고 아직도 트라우마를 벗지 못한 청산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 어두운 에피소드의 역사를 다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2010년에 이 영화 작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우리가 얼마나 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겪어야 할 것인가 라고 질문한다.

<레오니드 이야기>는 2011년 5월 제8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2012년 리우데자네이루의 국제우라늄영화제에서 최우수 옐로오스카상을 받는 등 여러 영화제에서 수상했다.


김현우 탈핵신문 편집위원

탈핵신문 2019년 5월호(66호)


Posted by 석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