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여름 탈핵희망 국토도보순례



2019년 여름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는 시작부터 발걸음이 가벼웠다. 출발 3주 전에 날아온 삼척핵발전소 예정구역 고시 철회 소식 덕분이었다. 2010년부터 9년간, 1982년 첫 핵발전소 예정구역 지정부터로 치면 37년간 삼척시민과 전국의 탈핵희망을 염원하는 이들이 거둬낸 승리였다.


6월 21일 금 늦은 밤,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균도 아빠의 ‘발달장애인과 세상걷기’사무실에 삼척, 제주, 청주, 서울에서 온 톰(성원기 교수), 니키(정병철 수사), 멘나(숲정이), (박)소산, 청명과 내가 모였다 -우리는 탈권력과 평등을 위해 직함을 생략한 호칭을 사용한다.


2019년 6월 22일 토 368구간

기장군 고리핵발전소~울산 온양 남부통합보건지소 17.6km


오전 9시, 고리 핵발전소 앞에서 2013년 6월 6일부터 7년째 이어온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의 2019년 여름 순례를 기자회견으로 시작했다. 그곳은 2년 전인 2017년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고리1호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한국사회가 탈핵국가로 출발함을 선언한 장소였다. 그사이,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는 공론화로 인해 건설이 재개됐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취소소송 1심 승소에도 불구하고 건설이 계속 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금지에 대한 WTO 2심 승소만이 희소식이었다.


2019 여름 탈핵도보순례 첫 날, 고리원자력본부 정문 앞에서 부산과 울산 탈핵활동가 등 순례단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부산 김현욱 활동가와 같이 온 반려견 이름은 '탈핵이'이다.


오전 10시, 고리 핵발전소에서부터 울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40분쯤 지나 신고리 5·6호기 예정 지역 앞에서 석 달째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최현철 씨를 만났다. 그는 6호기 목공 담당기술자였는데 부실공사 내부고발을 한 후 지금까지 허허벌판에 있었다. 그는 예산이 삭감되고 인건비가 줄어듦에 따라 기공들이 단가 문제로 신고리 5·6호기 건설 현장에서 일하기를 기피하는 경향도 있다고 했다. 또 신고리 6호기 터빈건물 구조물 기초공사 과정에 용접을 하면 녹이 슬어 안 되는데 주철에 용접이 진행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사고 나면 끝장나는 핵발전소에 부실공사라니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기자회견 때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이하 탈핵울산공동행동) 측에서 원전위험공익제보센터(052-296-5977)를 공지한 이유가 있었다.


순례단은 8km 정도 걷다가 용석록 탈핵울산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차를 타고 경주로 이동해 오후 2시 <핵폐기물 이제 그만, 10만인 행동>집회에 잠시 참석했다가 다시 돌아와 나머지 10km를 걸었다. 예정보다 두어 시간 늦은 오후 7시, 울주군 남부통합보건지소에서 순례 나눔을 한 후, 김진석 탈핵울산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의 안내로 진하해수욕장에서 밤을 보냈다. 이번 순례가 이전과 다른 점은 성당에서 성당으로 이동하던 경로를 지역사회운동가들이 담당하며 숙식이 다양해진 것이었다.


6월 23일 일 : 369구간

울주군 남부통합보건지소~울산시청~중구보건소 17.3km


신정시장에서 살아있는 울산을 보았다. 수고한다고 콩국물을 나눠주는 상인들의 반응은 호의를 넘어 감동이었다. 울산 시민들은 사고 위험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고 그만큼 깨어있는 의식을 보여 있었다. 터미널 식당의 점심식사도 풍성했고 순례 후에 들렀던 ‘조금은 느린 카페 902’의 대추라테는 지친 몸과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6월 24일 월 : 370구간

울산 중구보건소~경주 외동읍 행정복지센터 18.4km


아침 8시 반, 중구보건소에서 한상진 울산대학교 교수(울산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와 서민태 전 탈핵울산공동행동 상임공동대표, 석록과 톰, 니키, 청명과 나, 모두 일곱 명이 걷기 시작했다. 잠시 후 도착한 북구청에는 윤종오 전 북구청장이 중소상인을 지키기 위한 소신행정을 하다가 코스트코 구상금으로 인해 자택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자 면제 촉구 농성을 22일째 하고 있었다. (다음 날 오후, 울산북구청이 구상금으로 인한 아파트 경매를 전격 취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길에 희망이 꽃핀 듯해 더욱 기뻤다.)


울산 북구 농소공영차고지를 지나 경주와 울산에서 활동하는 박규택 활동가가 합류했다. 전날 함께 걸었던 임영상 탈핵울산공동행동 상임공동대표가 있는 약국에 들러 상비약을 받았다. 인적이 드물고 깔끔한 동천 제방길에서 탈핵과 재생에너지와 소수인권과 자연보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울산에서 경주까지 370구간 순례 나눔 하는 순례단원들


경주로 넘어오자 장춘(김향희)과 최수미 울산탈핵공동행동 前(전)대표가 합세했다. 잠시 후, 외동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울산의 지극한 정성과 헤어짐이 아쉬웠다. 그러나 불국사 앞 식사 후 들른 <음악이 있는 집 디자인 목공방>은 예술문화의 미감을 풍성히 채워주었다.


6월 25일 화 : 371구간

경주 외동읍 행정복지센터~월성 핵발전소 21.9km


371구간 외동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월성핵발전소 가는 길


371구간은 장거리에 산을 넘는 험난한 경로였다. 그러나 순례단의 피로를 말끔히 날려버리는 안강 세 언니들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모니카, 루시아, 아녜스. 그들은 배낭 가득 삶은 달걀, 오이, 빵 등 간식을 쟁여온 어머니 마음에 길가의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에도 인사를 던지는 소녀 감성을 함께 지지고 있었다. 덕분에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과 주미 사무차장과 톰, 청명, 나는 수월하게 산을 넘어 월성 핵발전소까지 다다랐다. 홍보관 옆 농성장에 황분희 월성이주대책위원회 부회장님이 계셨다. 촛불집회에서 보고 무작정 취재하러 내려온 그 여름 이후 나는 국회, 광화문, 청와대 앞, 후쿠시마 등 여건이 닿는 대로 황분희 회장님과 함께했다. 그러나 투쟁한지 1762일이 되어도 나아리 주민들은 핵발전소 코앞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월성원전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농성 천막 앞에서 경주의 탈핵활동가들과 순례단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날 순례단은 고준위핵폐기물이 잔뜩 쌓여있는 중수로형 핵발전소인 월성핵발전소 1km앞 황부회장님 댁에서 묵었다. 고압선 철탑 아래를 걸으면서 시작된 두통에 식사 중 피부 알러지 반응이 일어났다고 하면 호들갑떤다고 하겠지만 그건 내 몸이 치는 아우성이었기에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광부들은 갱도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데려갔다. 메탄, 일산화탄소 위험도를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친환경유기농위주 식단을 20여 년째 유지하고 있는 내 몸이 핵발전소 앞에서 키운 식물을 먹고 그렇게 반응했다. 환경요인이든 심리요인이든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런 곳에서 주민들은 30년째 살고 있었다.


다음 날, 다시 경주 외동읍에서부터 출발한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단은 대구, 대전을 거쳐 7월 12일 청주 사천동 성당에서 1차를 마치고, 8월 17일 다시 청주에서부터 24일 서울 광화문까지 총 29일간 순례를 이어가는 중이다. 순례단이 지나는 구간 가까이에 계시는, 탈핵을 희망하는 분들은 누구라도 참여하실 수 있다. 잠시라도 함께 걷는 길에 생명과 평화가 피어날 것이다.


탈핵신문 2019년 7월호(68호)

글·사진 일곱째별(다큐멘터리·르포작가)

Posted by 석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