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2019.09.09 14:54

∥기고




히로시마는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난 8월 5일, 꼭 풀어야할 숙제에 떠밀리듯 나는 합천으로 향했다. 원폭피해자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나라, 한국. 한국의 원폭 피해자들 대부분이 모여 산다는 제2의 히로시마 합천.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뜨거웠고 무더웠다. 74년 전 그 날의 히로시마 날씨도 이랬을까?


2019년 합천 비핵평화대회는 김형률씨의 짧은 생을 담은 영화 <리틀보이 12725>로 막을 열었다. 김형률 씨는 ‘원폭2세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물으며 고뇌했다.


원폭2세라는 정체성을 찾기 위해 일본 히로시마에 가고 싶어 했던 청년. 그 곳 히로시마에는 원폭 피해자들의 모임이 17개나 있고, 그 곳 히로시마에 가면 자신과 같은 원폭2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이들을 만나면 원폭2세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여겼던 것이다.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는다는 것,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것은 자기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더불어 함께 만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이 곳 한국 땅에서 원폭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밝힐 수 없었고, 그러므로 원폭 피해자들이 모인다는 것 자체도 불가능했다.


“나는 원폭2세대입니다.” 2002년, 서른 두 살 김형률씨는 이렇게 커밍아웃을 한다.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세상 모든 것에 맞서는 것이 될 때, 한 개인이 어떻게 자기 존재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 그건 곧 차별과 배제를 각오하는 것이며,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속에서 친구를 찾겠다는 몸부림인 것이다. 그의 커밍아웃은 원폭 피해자들이 모이는 기폭제가 되었고, 그 결과 한국 원폭피해 2세들의 문제 또한 사회에 드러나게 되었다.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내 몫으로 남는 것이 있다. 그건 그의 커밍아웃에 나나 우리사회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미국정부와 일본정부 그리고 한국정부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다. 원폭 범죄에 함께 해온 한국사회 또한 책임이 있다.”


일기장 한 귀퉁이에 쓰인 한 줄. 원폭 피해에 내내 무관심해온 한국 사회를 향한 그의 비판이다. 지금이라도 그의 커밍아웃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어떻게 친구로서 응답할 수 있을까? 합천에 다녀온 이후 나를 떠나지 않던 질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때가 8월15일쯤이었던가? 러시아에서 미사일에 장착된 핵이 폭발했다는 뉴스에다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로 방출하겠다는 결정을 발표하던 날, 문득 떠오른 한마디.


“1945년 8월 6일 이후, 우리 모두는 원폭 피해자입니다. 그 날 이후, 인류는, 이미 태어난 사람은 물론이요, 태어나길 기다리는 태아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들 또한 원폭 피해자입니다.”


아, 왜 이걸 이제야 깨닫는 것인가? 히로시마 핵폭탄 투하이후 무수히 치러진 핵무기 실험, 핵발전에 의한 방사능 오염, 세계 곳곳은 이미 방사능에 오염된 게 아닌가? 모든 인류는 원폭 피해의 가능성을 항상 안고 사는 게 아닌가? 김형률씨의 질문은 히로시마 원폭2세만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질문이 되어야 했다. 74년 전의 히로시마가 여전히 인류에게 던지는 질문,

우리는 원폭2세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최수미 대안문화공간 품&페다고지 대표

탈핵신문 2019년 9월(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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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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