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019.10.13 16:36

∥ ICRP 권고의 양상과 본질

전 세계에 영향 끼치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 해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권고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은 평상 시 1밀리시버트(mSv)였던 일반인 방사선량 한도를 핵발전소 중대사고가 발생하자 20mSv까지 높였다. 방사선량 20mSv는 일본 정부의 주민 피난지시 기준이 되었고, 이는 ICRP 권고에 따른 것이다. 한국 역시 방사선 관련 기준에 ICRP 권고를 따르고 있다. 탈핵신문은 ICRP 권고 흐름을 이번호에 소개하고, 이 권고에 따른 실제 영향과 사례에 대해 다음 호에 소개할 예정이다.

글을 쓴 박찬호 반핵의사회 운영위원은 피폭노동을 연구하며, 『핵발전소 노동자』, 『생명을 살리는 반핵』 등 일본에서 발간된 책을 번역해 한국에 소개했다. 1991년에는 원진레이온 직업병 투쟁에 함께하면서 녹색병원 설립 초기부터 실무자로 참여했다. - 편집자 주 -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국제적인 방사선방호를 총괄하는 민간기관이다. 민간기관 임에도 각국 정부에 대한 영향력은 상당히 크다.

ICRP는 보고서 형태로 자신들의 주장을 발표한다. ICRP의 보고서는 ‘일반권고’(혹은 일반보고서)와 일반권고 보다는 내용이 협소하고 특정 주제를 다룬 ‘보완보고서’로 나눌 수 있다. 지금까지 일반권고는 총 6회(1959, 1964, 1966, 1977, 1990, 2007)가 나왔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2018년 연차보고서 표지 (사진 = ICRP 홈페이지)


ICRP는 1959년 권고에 자신들의 역할을 “방사선방호의 기본원칙을 제시”하는 것이고, “각국의 필요에 가장 적합한 상세한 기술적 규칙, 권고 및 시행규칙을 채택하는 권리와 책임은 각국의 방호위원회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제 세계 각국이 직·간접으로 ICRP의 기본원칙을 채택하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다. 유념해야할 것은 ICRP가 방사선 방호를 다루기 때문에 현재의 과학수준을 참고하는 것은 맞지만, 과학에 목을 매는 단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그럴 생각도 없다.


1920년대 피폭노동자 방호연구

국제X선라듐방호위원회가 ICRP 전신


ICRP는 자신들의 출발을 1928년으로 제시한다. 설립당시의 명칭은 국제X선라듐방호위원회(IXRPC)다. 설립 계기는 1920년대 방사선으로 인한 업무상 재해가 세계적으로 많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X선 장치와 라듐의 이용, 또 의학적 진단·치료 장비를 급속히 보급한 결과 방사선 급성증상과 만성증상, 치명적인 암이 무수히 발생했다. 라듐의 경우에는 시계의 숫자판에 야광도료를 칠하는 작업에 종사했던 미국 여성노동자 중에 1924년경부터 골육종과 재생불량성 빈혈로 생명을 잃는 경우가 속출했다. 이는 미국 노동부와 공중위생국이 전국적 조사를 진행해야만 할 만큼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국제X선라듐방호위원회는 영국 2명, 미국, 독일, 스웨덴 각 1명씩 5명의 위원을 구성하고, 1928년에 설립하면서 제1회 권고를 제출했다. 엑스선이나 라듐작업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1일 7시간 이내, 1주 5일 이내로 제한했다. 아울러 방호와 관련된 구체적인 시설이나 장비 등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효율적인 방사선방호를 위해 얼마만큼의 양이 적당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하지 못했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1925년경부터 시행된 여러 사람들의 연구보고가 있었다. 미국의 무첼러(Mutscheller)는 몇 개의 시설에서 전리상자를 이용하여 엑스선을 취급하는 사람들의 선량을 추정하여 피부홍반이 발생하는 선량의 1/100 이하라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1920년대 후반에는 독일이나 스웨덴의 학자들도 모두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1934년 국제X선및라듐방호위원회는 최종적으로 1 홍반선량을 600뢴트겐으로 환산한 값, 즉 하루당 0.2뢴트겐(약 1.7 밀리시버트(mSv))을 “내용선량”으로 규정하고 이를 권고하였다. 내용선량이란 특정기준 이상 방사선에 쪼일 경우 회복 불능한 급성이나 만발성장애가 발생한다는 한계 선량이다. 당시엔 내용선량 이하의 피폭은 해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렇지만 유전학자들은 내용선량의 관점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유전학자들은 1927년 뮬러가 초파리에게 X선을 쪼여 돌연변이 유발에 성공한 이후 아무리 소량의 방사선이라도 선량에 비례하여 유전적 영향이 발생한다고 확신했으며, 일정수준 이하라면 안전하다고 하는 내용선량의 개념을 일관하여 비판했다.

유전학자들의 지속적인 문제제기는 결국 내용선량을 10분의 1 인하하도록 합의했으나,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 계획으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미국은 선량인하가 실현될 경우 맨해튼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했다.


미국, 핵 이용한 인체실험 자행

핵 이용 진흥 위한 ICRP 설립


미국은 1942년 8월 맨해튼 공병부대를 창설하고 핵을 이용한 각종 인체실험을 자행했다. 미국은 암 환자의 전신에 X선을 쪼이는 인체실험 후에 40렘(400mSv)의 방사선 피폭까지 림프구 감소는 발생하지 않는다거나, 총 피폭선량 300렘(3 시버트(Sv))까지라면 장애는 나타나지 않고 “견딜 수 있다” 등의 결과를 보고했다.

미국은 또 플루토늄의 독성이나 흡수율 조사를 위해 많은 환자에게 비밀리에 플루토늄을 주입하는 인체실험도 시행했다. 나아가 미군은 병사들을 핵 실험장 버섯구름을 향해 돌격시켜 고의적으로 피폭을 겪게 하고, 의학 자료를 수집하는 인체실험을 자행했다.

이러한 인체실험의 목적은 미군의 핵전쟁 수행능력 향상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는 미국 국방부의 실험보고에 “200렘(2Sv)까지의 피폭선량이라면 지속능력은 확실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기록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미국은 전쟁 후에는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피폭자를 추적조사하기 위해 원폭상해조사위원회(ABCC)를 설립했다. ABCC의 목적도 핵 전쟁 수행 능력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미국은 미국주도의 핵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우선 국내에 전미방사선방호위원회(NCRP)를 설립하다. 이후 국제조직이던 국제X선라듐방호위원회(IXRPC)의 유전학자들을 제외하고 NCRP를 중심으로 핵추진 찬성파로만 위원을 구성한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를 탄생시켰다.

미국은 노동자의 방사선방호 대책을 중심적으로 고민하던 국제X선라듐방호위원회를 핵추진을 위한 조직으로 변질시키고, 방호자체는 어디까지나 핵 추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합리화하는 논리를 개발하도록 했다. ICRP의 설립 동기는 노동자의 방사선방호를 뒷전으로 미루고 핵의 이용 개발에만 초점을 둔 것이다.


유전학자들이 반대한 허용선량 개념 도입

“위험보다 혜택 크면 방사선 위험 수용해야”


ICRP는 미국의 전미방사선방호위원회 주도로 탄생했지만, 독자적인 핵·원자력 개발의 구체적인 대책을 아직 갖고 있지 못했던 많은 유럽국가가 참가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미국의 의도대로 추진된 것만은 아니다. 또한 ICRP는 핵무기·핵개발에 반대하는 반핵운동이 유럽에서 크게 확산되면서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유전적 영향을 우려하여 일반인에게도 일정한 선량한도를 설정해야 한다는 합의를 내부에서 통과시키기도 했다.

비록 미국 개입으로 무산되었으나 초기 ICRP는 미국원자력위원회나 전미방사선방호위원회와 자주 의견을 대립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1950년 연차보고서에 “피폭을 가능한 최저수준까지 인하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서술하여 미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입장을 관철시킨 것이다.

반면에 ICRP는 유전학자들이 반대했던 “허용선량” 개념은 받아들였다. 허용선량은 “개인이나 집단 전반에 허용할 수 있는 일정한 위험을 동반하는 선량”으로 정의한다. 허용선량은 “일정한 위험을 수반”하는 선량이지만, 핵 개발 추진을 위해서는 약간의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그런 선량인 것이다.

허용선량이 이전의 ‘내용선량’과 다른 점은 ①방사선으로 인한 장애발생 가능성을 인정하고, ②방사선을 꼭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위험부담(리스크)은 불가피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리스크 불가피론을 도입했다는 점에 있다.

전미방사선방호위원회를 중심으로 제기해 온 소위 ‘리스크 수용론’은 1950년대 후반 ‘리스크-베네피트론’(위험-편익론)으로 정비되었다. 위험-편익론은 “핵 개발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방사선의 리스크는 사회 전체가 받는 혜택(베네피트)과 비교했을 때 혜택이 훨씬 크기 때문에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 핵심 논리다. 


"ICRP는 과학으로 위장한 정치 조직"


1958년 권고, 위험-편익 채택

위험해도 편익 있으면 수용해야


ICRP는 1958년 첫 권고를 발표했다. 그 이전인 1957년 미국의 원자력위원회는 ICRP의 권고 발표를 염두에 두고, 1957년 말에 핵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허용선량을 기존보다 3분의 1로 낮춰 안전성에 신경을 쓰고 있는 시늉을 했다. 당시 연간 한도는 피폭 노동자의 경우 50mSv, 일반인은 5mSv로 설정했다. 하지만 미국이 제기한 “리스크-베네피트론”도 전면적으로 도입한다.

허용선량과 리스크-베네피트론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뗄 수 없는 정책이다. 허용선량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일정한 위험을 동반하는 선량이다. ICRP는 피폭의 불가피성을 반영하여 1950년의 “가능한 한 최저 수준까지”라는 권고를 1958년에 “실행 가능한 한 낮게”로 대폭 완화했다. 이와 함께 암․백혈병 등 방사선의 신체적 영향에는 문턱선량이 존재한다고 줄기차게 선전했다. 특히 미국의 위원들은 100렘(1Sv) 이하면 암․백혈병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근거로 삼은 것은 원폭피폭자의 백혈병에 관한 ABCC(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상해조사위원회) 데이터 등이다.

ICRP의 의도와는 달리 ‘리스크-베네피트론’은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켰다. 방사선 리스크는 노동자의 경우 월급을 받기 때문에 소위 ‘베네피트’(편익)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일반인들이 핵실험 등에 의한 낙진으로 피폭할 경우에 이들에게는 “리스크만 있고 베네피트는 없는 상황 아닌가?” 라는 문제제기가 있었다. 이에 대해 ICRP는 “사회적 베네피트”라고 주장했다.


1970년대 반핵운동 확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적인 반핵운동의 확산과 함께, 핵발전소 반대운동도 더 한층 강력해졌다. 핵발전소의 안전장치 추가나 정기점검을 더욱 강화해야 했고, 이로 인해 경영상의 비용이 증가하여 이익률의 감소가 불가피해졌다. 이와 함께 ICRP의 주장을 뒤집는 역학조사가 속속 대두하였다.

1950년대 말 영국 앨리스 스튜어트는 태아기에 엄마가 받은 2mSv의 엑스선 피폭으로도 소아백혈병이나 소아암의 자연발생률이 2배로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또 미국 국립연구소의 연구자였던 고프만과 탬플린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피폭조사를 수정하고 ICRP의 암 백혈병 리스크는 10~20배 과소평가되었으며, 허용선량을 수정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원자력위원회가 조사를 의뢰한 연구에서 토마스 맨큐소는 ICRP의 주장보다 10배가 더 많은 리스크를 보인다고 발표했다. 결정적으로는 미국이 “한정핵전략구상”이라는 취지하에 중성자폭탄을 개발하는 과정에 기존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조사선량이 과소평가되었음을 확인했다. 핵추진 세력 내부에서조차 기존의 선량평가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1977년 권고, 비용-편익 채택

생명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


이런 상황에 접어들자 ICRP는 상당한 수세에 몰렸다. 그러나 ICRP는 1977년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수준에서 낮게”(ALARA)로 권고를 변경하면서 기존의 입장을 더 강화시키려고 했다. 아울러 허용선량 개념을 포기하고 ‘선량당량’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왔다. 또한 가장 민감한 특정 장기에 대한 선량으로 피폭을 제한하려는 ‘결정장기’라는 종래의 견해를 포기하고, 선량한도를 전신 5렘(50mSv)으로 변경했다.

1977년 ICRP 권고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존의 ‘리스크-베네피트론’을 ‘코스트-베네피트론’(비용-편익)으로 변경했다는 점이다. 방사선 피폭관리에 공공연히 금전적 계산을 도입한 것이다. 이때부터 ICRP는 사람 생명의 가치도 돈 가치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모든 리스크를 비용으로 환산하면서 다른 위험성과 비교해 ‘상대적인 크기’의 차이로 왜소화해 버렸다. 이는 핵발전소의 운영으로 방출되는 방사선이 교통사고나 각종 재해와 비교해 빈도가 적고, 별로 위험하지도 않다는 주장이다.

때마침 발생한 1979년의 미국 스리마일 섬 핵발전소 사고, 1986년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각인시켰다. 특히 체르노빌 사고 규모는 구소련 우크라이나 공화국과 벨라루시 공화국 등 핵발전소에서 30km 구역에 한정되지 않았으며, 약 100~300km나 떨어진 지역주민들도 잇따라 피난해야 했다. 사고 후 3~4년 이상이 지난 후에도 10만~100만 명 규모의 주민이 피난해야 할 만큼 오염지역의 높은 피폭선량을 확인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일본 원폭피폭자 조사에서는 피폭 후 40년 이상이 지나도 질병 발생이 감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증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방사선의 ‘선량-영향’ 관계가 기존의 견해와는 완전히 달라 소위 ‘문턱선량’의 존재로 이어지는 ‘직선-곡선’ 관계가 아니라, 선량에 비례하는 직선 관계라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1990년 권고

노동자를 일회용으로 사용하겠다는 국제 선언


ICRP는 선량한도 변경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우선 1985년 파리국제회의에서 일반인의 선량당량 한도를 1mSv로 내리고, 노동자의 선량한도도 처음엔 연간 50mSv에서 15mSv로 변경하려고 했다. 그러자 미국의 핵발전소 업체들이 크게 반발했다. 핵발전소 운영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ICRP는 결국 1990년 권고에서 일반인의 선량한도는 기존의 5mSv에서 1mSv로 인하했으나, 노동자의 선량한도는 5년에 100mSv, 다만 특정연도는 50mSv까지 피폭을 허용하는 이중기준 적용 정책을 발표했다.

핵발전소 대부분의 작업이 하청노동자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을 감안하면 5년간의 선량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현장에서는 노동자에게 1~2년 안에 50mSv의 피폭을 강요하고 해고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이중기준의 적용은 핵개발 세력이 핵발전소 하청 노동자를 일회용품으로 사용하고 버리겠다는 국제적인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하청 피폭노동자에게 누적 선량 기준은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ICRP는 일반인의 선량한도만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노동자의 선량한도는 이중기준을 적용하는 사실은 숨긴채 5년간 100mSv를 1년 평균으로 계산하면 20mSv라고 발표했다. 이는 완벽한 속임수다.


2007년 권고

중대재해로 인한 ‘선량한도’ 포기

어린이와 임산부 피폭 대책 전무


2007년 ICRP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의 경험을 토대로 이제까지의 주장보다 더욱 노골화시킨 권고안을 제출한다. 2007년 권고안의 특징은 피폭 상황을 3가지로 구분했다. ①비상피폭, ②기존피폭, ③계획피폭이 그것이다. 비상피폭은 중대재해가 발생하여 긴급하게 복구해야 할 상황을 의미하며, 기존피폭은 비상피폭의 방사선원 통제를 일정정도 확보한 상태이나 아직 피폭선량이 높은 상태다. 이럴 때 적용하는 기준은 ‘참고준위’인데 참고준위는 선량한도와는 달리 아무런 법적 구속력이 없고, 사실상 참고수준에 불과한 선량이다. ICRP는 비상피폭의 경우 20~100mSv, 기존피폭의 경우 1~20mSv를 제시했다. 이는 비단 노동자만이 아니라 모든 일반인에게도 적용하는 수치인 것이다.

ICRP는 1977년 권고 이후 ①정당화, ②방호최적화, ③선량한도라는 3대 원칙을 내세웠지만, 선량한도는 이미 포기한 상태다. 또한 방호최적도 “경제 사회적 요인을 최우선 고려”하여 개인 피폭을 “합리적으로 달성가능 한 수준”으로 대폭 완화했다. 결국 방호최적화는 피폭의 불가피성을 합리화하는 것과 같다. 즉 2007년 권고는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로 대량 피폭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이를 현실화시킨 것에 불과하다. ICRP의 권고에는 어린이의 피폭문제나 임산부의 피폭에 대해선 사실상 대책이 없다.


ICRP는 과학으로 위장한 정치 조직


ICRP는 사실상 정치조직이다. ICRP는 1990년 권고문에 자신들의 일반권고 목적에 대해 언급하기를 “피폭의 결과와 의미에 걸맞은 추정에는 폭넓은 학문분야의 과학적 판단만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판단도 필연적으로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ICRP는 방사선과 관련한 “과학적 평가”와 함께 “사회 경제적 판단”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행적을 본다면 사실상 과학적 판단보다는 사회 경제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크다. 이것은 핵산업 추진과 관련해서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고자 나타난 현상이다.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행위를 우리는 정치행위라고 볼 수밖에 없다.

ICRP는 지금까지 특정 집단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존재했으며, 아마도 그 성격은 잘 변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필자는 ICRP를 “과학으로 위장한 정치조직”이라고 해석한다.


2019 새 권고안 마련

ICRP의 개혁을 위하여


ICRP는 동일본대지진의 경험을 바탕으로 2019년 새로운 권고안을 마련하였다. “대규모원자력 사고에서 사람과 환경의 방사선방호”라는 제목의 이 권고안은 현재 일본 시민단체를 대상으로 의견수집 중에 있다. 지면관계상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검토가 어렵겠지만, 약간의 선량인하 수준 외에는 별 내용이 없다.

일본의 시민사회단체는 피난할 권리, 아동·피해자 지원에 대한 내용 부재, 주민의 피폭방호 정책 결정 참여, 참고준위나 방호최적화 개념 수정 등을 요구하며 활발한 의견개진과 토론을 진행 중이다.

피폭상황 합리화와 핵산업의 이익보호라는 내용의 근본적인 변경 없이는 방사선으로부터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할 수 없다. ICRP의 권고를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한국정부도 이런 점에 대해 반성하고 ICRP와는 반대로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는 것에 일차적인 초점을 둬야 할 것이다.


박찬호 반핵의사회 운영위원

탈핵신문 2019년 10월호(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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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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