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 행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핵발전으로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다는 낡은 주장도 계속되고 있다. 더는 늦출 수 없는, 그리고 후회 없는 기후위기 해법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핵발전의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평가해야 한다. 탈핵신문은 연중기획으로 <기후위기와 탈핵>을 연재한다.

 

<기후위기와 탈핵 연중기획>

유엔 기후체제 협상에서의 핵발전 논쟁사

기후변화 전문가들이 보는 핵발전

온실가스 감축을 말하는 찬핵론자는 누구인가

핵사이클과 온실가스 배출

기후위기 대응, 비용과 시간의 문제

지구온난화는 핵발전소도 위협한다

세계 핵발전 추진국과 온실가스 감축 실적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와 충돌하는 핵발전 시스템

탈핵과 탈석탄은 동시에 가능하다

 

기후위기와 탈핵 연중기획 

재생에너지 확대와 충돌하는 핵발전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추세가 강화되자, 최근 핵발전과 재생에너지를 함께 늘리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핵발전은 화석연료에 비해 온실가스 발생량이 적기 때문에 효과적이지 않겠냐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특히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가 늦은 우리나라의 현실 등을 고려할 때, 전통적인 에너지원인 핵발전과 신규 에너지원인 재생에너지를 동시에 확대하는 방법을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하자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전체 발전소와 송변전시설 등 전력계통의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전력거래소 중앙전력관제센터 모습. (사진=전력거래소)


과연 이런 방법이 가능할까? 이를 따져보려면, 전기가 어떻게 우리에게 공급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발전-송전-배전으로 이어지는 전력망은 매우 촘촘하게 우리 주변에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 전력망을 운영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전력 수요의 증감에 따라 발전량을 끊임없이 조절해야 한다. 전력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지 않으면 전력공급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전력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으면 전압과 주파수가 불안정해지고 심할 경우 블랙아웃이라고 불리는 광역 정전으로 이어진다. 우리 주변의 모든 전원이 끊어지는 것인데, 발전 설비가 아무리 많아도 수요-공급의 불일치로 인해 광역 정전이 생기는 것이다. 이 상황은 두 사람이 줄다리기하다가 한 사람이 손을 놓는 상황과 비슷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줄을 한쪽에서 놓으면 상대편이 아무리 힘 좋은 장사라도 넘어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일이 19719월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 당시 최신형 발전소이던 서울화력발전소 5호기가 갑자기 고장 난 일이 있었다. 서울화력 5호기는 250메가와트(MW)급으로 지금보면 작은 발전소였지만, 당시에는 우리나라 전체 발전용량의 18.5%나 차지할 정도로 큰 발전소였다. 이렇게 큰 발전소가 갑자기 가동을 멈추자 연쇄 반응이 일어나 전국적인 정전이 발생했다. 전체 발전용량은 전력수요보다 넉넉한 상황이었지만, 갑자기 벌어진 발전소 가동 정지에 무방비로 당했다.

 

대규모 정전 막으려면 전력 수요와 공급 일치 중요

용량 큰 핵발전소 때문에 태양광 발전기가 멈추는 상황 걱정

 

우리가 24시간, 365일 동안 전기를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력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하루 종일 전력 수요는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전력 수요에 맞춰 발전량 출력을 조절하거나 낮출 수 있는 유연성 전원이 필요한 것은 이런 전력망 운영의 특징 때문이다. 많은 나라가 가스화력발전소나 수력발전소와 같이 상대적으로 비싼 발전소를 운영하는 것은 이런 전력 수요에 긴밀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반면 석탄화력발전소나 핵발전소 같은 발전소는 규모가 크고 출력조절이 어려워서 대표적인 경직성(硬直性) 전원으로 불린다.


최근 태양광 발전이 늘어남에 따라 과거와 다른 이유로 블랙아웃이 생길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대형 발전소 1기가 가동을 멈출 경우 일시적으로 전력 주파수 저하 현상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태양광 발전소에 영향을 미처 전국적인 태양광 발전 중지 사태가 생길 수 있다는 분석 결과다


지난 7, 대한전기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이 내용은 평상시 60Hz 수준인 전력 주파수가 59.3~59.8Hz 로 떨어질 경우, 태양광 발전기들이 이를 비정상 상태로 인식해 가동을 멈추게 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지난 3, 신보령 석탄화력발전소 1호기가 불시 정지하자 10초 뒤 주파수가 59.8Hz로 하락했고, 이를 감지한 태양광 발전설비들이 정지하면서 연쇄 반응을 일으켜 59.67Hz까지 추가 하락했다


다행히 당시 주파수의 연쇄적인 하락은 더 이어지지 않았지만, 대규모 발전소가 가동을 멈출 경우 연쇄적인 반응으로 광역 정전이 일어날 가능성이 공식적으로 제기됐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태양광 설비의 설정치를 바꾸는 새 기준을 만들고, 설정치를 바꾸는 작업에 들어갔다. 불시에 대규모 핵발전소가 여러 개 멈추는 상황에 대비한 작업은 추가로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용량이 큰 핵발전소가 재생에너지를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용량이 큰 핵발전소 때문에 태양광 발전기가 멈추는 상황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다.

 

핵 발전량 증가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하기도

 

또 다른 측면을 살펴보자. 전통적인 대용량 발전소인 핵발전소와 분산형 재생에너지의 공존은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결론부터 말하면 핵발전과 재생에너지는 서로 충돌한다. 영국 서섹스대학와 독일 국제경영대학원 연구팀이 최근 <네이처 에너지>에 발표한 논문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관련기사 탈핵 신문 202010월호 참고).


1990년부터 2014년까지 25년 동안 세계 123개국 자료를 분석한 이 논문은 핵발전 증가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가 관찰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높은 나라들의 경우에는 핵발전량 증가에 따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었지만, 감소폭은 재생에너지에 투자한 경우보다 적었다. 심지어 1인당 국내총생산이 낮은 지역에서는 핵 발전량이 증가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오히려 증가하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정된 재원을 투자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고려할 때, 상반된 특징을 가진 핵발전과 재생에너지 모두에 투자하는 것은 서로에게 간섭 효과를 주게 되는 것이다. 에너지원 간의 경로 의존성(lock-in)이 생기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시대, 핵발전과 재생에너지의 공존은 온실가스 저감에 큰 역할을 할 것 같지만, 효과적인 투자 방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분산형 시스템에 맞춰 송전망 재설계 필요

 

재생에너지 설비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핵발전과 같은 대규모 발전 설비와 재생에너지의 충돌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최근 풍력발전기가 많이 설치된 제주도가 대표적이다. 기존 발전 설비가 운영되는 가운데, 바람이 좋은 날 발전량이 수요보다 많이 강제로 풍력발전기를 멈추는 제약발전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올해 1월에서 8월까지 8개월 동안 제주의 풍력발전 출력 제한은 45회나 이뤄졌다. 즉 바람 상황이 좋아 풍력발전을 할 수 있음에도 강제로 발전기를 멈춘 것이다. 이에 따라 생산하지 못한 전력이 같은 기간 13.1기가와트시(GWh)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도가 2019년 한 해 동안 사용한 전력량이 5,374GWh이니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재생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음에도 발전을 못하게 하는 이와 같은 일을 막으려면, 송전망을 분산형 시스템에 맞춰 재설계해야 한다. 또한 발전소를 멈춰야 하는 일이 발생하면,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우선권을 주어 가장 늦게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멈추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석탄화력이나 핵발전의 시대에서 재생에너지로 넘어가는 과도기이기 때문에 이러한 제도적 장치는 더욱 세밀하게 구성되어야할 것이다. 바꿔 말하면, 대규모 중앙집중식 발전소를 어떻게 전력망에서 걷어낼 것인지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이 과도기를 짧게 할수록 비용은 절감되고 핵발전과 석탄화력발전의 문제점으로부터 빠르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기후위기 극복이 중요한 화두로 대두되고 있는 시대, 화석연료로부터 빠르게 벗어나기 위해 세계 각국이 노력하고 있다. 이 가운데에서도 핵발전은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발전원일 수밖에 없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

탈핵신문 2020년 11월(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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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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