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칼럼2020. 11. 19. 11:02

칼럼

근본적 성찰 없이 기후위기 극복 어렵다

 

한재각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소장

 

기후위기와 핵 위험은 현대 산업 문명의 성공이 가져다준 비극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요즘 들어 이 두 위험의 크기가 견줘지고 교환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일이 잦다. 주로 보수 진영에서 나오는 말이다. 언제부터 기후위기를 그리도 심각하게 여겼는지 모르겠으나, 빠르게 탄소 중립을 하려면 원자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 진영에 국한된 생각은 아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인식이 더욱 고조되고 탄소 중립이 강조될수록, 사람들은 탄소 배출이 없는 기술로서 핵발전에 대한 호소를 매력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여기서 기후위기의 기술관료적 해결책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 기후위기를 단지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의 배출에 의한 것으로 협소하게 이해한다면, 핵발전뿐만 아니라 수많은 지구공학적 수단들이 고개를 들 수 있다. 사람들이 굶든 호주만한 면적의 땅에 나무를 심어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뽑아내겠다거나, 해양 생태계가 어찌 되었든 프랑크톤을 대량 번식시키면 같은 결과를 얻겠다는 발상들이 나올 수 있다. 후자는 다행히 생물다양성협약에 따라 금지되어 있지만, 전자는 IPCC의 기후과학자들까지 거론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부자이자 기술주의자인 빌 게이츠는 짐짓 지구의 구원자로 나서려고 한다. 기후변화를 막을 대안으로 스마트 원전을 권유하기도 했던 그는 또 다른 지구공학의 열렬한 옹호자다. 이번에는 이산화탄소가 아니다. 성층권 대기 중에 먼지(황산화염)를 뿌려 대면 지구 안으로 쏟아지는 태양에너지를 줄여서 지구온난화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에 필리핀에서 폭발한 피나투보 화산 재가 성층권까지 들어가 지구 기온을 0.5도 정도 떨어뜨린 사례를 거론한다. 그러나 많은 지역에서 홍수와 가뭄 등 거대한 이상 기후를 경험하고 사람들이 고통당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핵발전이든 지구공학이든, 이 기술의 옹호자들은 대량 생산과 소비의 자본주의 방식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지구공학의 열렬한 옹호자로 알려진 미국의 한 항공사 대표에게 지구공학은 기후변화 걱정 없이 사람들이 비행기를 계속 탈 수 있도록 해주는 대안이다. 당연히 자신은 계속 돈을 벌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사실 이러한 멋진 신세계의 대열에는 안타깝게도 재생에너지 지지자들도 은근슬쩍 합류해 있는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핵발전소와 석탄발전소를 기술적으로만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려고만 한다면, 그래서 사회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노력은 주변화한다면, 핵발전과 재생에너지 지지자 사이에 조그만 샛강만이 흐를 뿐이란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신경쓰는 만큼, 아니 그에 앞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절실 하다. 그리고 에너지 소비를 줄인다는 것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양립하기 어렵다. 기술적 효율성을 높여 이 둘을 양립시키려는 꿈에 매달리는 이들이 성공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에 회의적일지라도 완전히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과 자원을 그들에게 갖다 받쳐야 하나. 한국에서 그린뉴딜은 그런 몽상을 위해서 소비되고 있고, 그 뒤에 불룩한 돈주머니가 보인다.


탈핵신문 2020년 11월(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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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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