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2021. 8. 20. 09:28

다시 찾아온 선거의 계절, 기후위기 대응을 놓고 치열하게 다퉈야 할 상황이지만 여전히 탈원전이 더 뜨거운 이슈다. 왜곡된 정보로 사실을 호도하는 것은 비단 보수 언론과 원자력계만의 일이 아니다. 소형 모듈 원자로(SMR) 환상을 부채질하고 있는 집권 여당의 모습은 원칙과 철학 없이 추진한 탈원전정책의 민낯을 보는 듯하다. ‘탈원전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피할 수 없고, 그 결과는 2020년대 탈핵의 경로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다시 탈핵의 철학과 정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 찾아왔다.

 

『탈원전의 철학』(사토 요시유키·다구치 다쿠미 지음, 이신철 옮김. 도서출판b 2021) 

 

탈원전의 철학은 제목 그대로 탈핵의 철학을 탐색하는 책이다. 철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경제학, 환경학, 사회학, 공해 연구 등을 넘나들며 탈핵의 논리를 촘촘히 쌓아간다. 덕분에 이 책에는 레이첼 카슨, 루이 알튀세르, 미셀 푸코 등 핵발전과 좀처럼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들이 곳곳에 등장해서 말을 건넨다. 핵발전이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비싸고 위험해서가 아니라 차별을 구조화하기 때문이라고. 결론만 놓고 보면 익숙한 이야기일 수 있으나 책을 덮을 즈음이면 탈핵 담론이 한층 두터워진 것을 느낄 수 있다.

 

탈원전의 철학을 읽는 키워드는 권력과 이데올로기, 구조적 차별과 탈피폭의 권리다. 이 책이 핵무기와 핵발전의 관계를 다시 물으며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핵발전 기술의 뿌리가 핵무기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잠재적인 동시에 현재적인 핵 위험을 인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도쿄 인근 5000만 명 피난 시나리오까지 검토했다는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의 말을 떠올린다면, 핵발전소 중대 사고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전쟁밖에 없다는 저자들의 지적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핵 위험에 대한 감각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다. 『탈원전의 철학』이 파고드는 지점은 바로 이곳, 감각 상실을 유도하는 ‘부인’ 이데올로기이다. 지진 및 중대 사고 예측이 반복적으로 부정된 이유, 사고 대책을 부실하게 만드는 ‘안전 신화’가 지속되는 이유, 그 이면에는 핵 위험을 부인하는 지식 권력이 작동한다. 달리 말하면, 지배 체계를 재생산하는 사회적 관계들을 승인하고 재생산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부인하는 이데올로기는 핵발전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이처럼 위험과 피해를 부인해온 역사는 깊다. 핵발전에 내재한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파헤치기 위해 저자들이 공해 연구를 되짚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제 초점은 공해를 유발하고 피해를 부인·전가하는 시스템의 문제로 이동한다. 저자들은 지방 종속화의 기제로서 전원3법을 환기한 뒤, 그것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한다. 한 예로, 산업화 초기에 일어난 광독 피해를 사례로 일본의 발전 모델을 떠받친 중층화된 공해 피해의 구조를 파헤친다. 이렇게 핵 위험을 역사적 지평 위로 끌어올려, 그것이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차별의 가장 극단적 사례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구조적 차별을 없애지 않고 탈핵으로 가는 길이 열릴 것인지, 되묻는다.

 

이쯤에서 떠오르는 질문, 그렇다면 어떻게 탈핵을 이룰 수 있을까? 탈원전의 철학출발점은 탈피폭의 권리다.

 

저자들은 일본 정부의 귀환 정책을 비판하며 피폭을 피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피폭을 피할 수 있는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라 꼬집는다. 다만 한 걸음 더 나아가 탈피폭의 권리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묻는다면, 탈원전의 철학의 답변은 다소 뭉툭하다. 저항적 주체화, 구조적 차별의 해소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지도 역시 흐릿하다.

 

해법을 찾는 이들은 아무래도 아쉽겠지만, 탈핵의 정치가 아닌 철학을 탐색하는 책인 만큼 탈핵의 정치사회적 전략까지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게 아닐까? 정치 없이 철학만으로 탈핵을 할 수 없지만, 철학 없는 정치의 한계를 여실히 확인한 만큼 탈핵의 철학을 다지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역할은 충분하지 싶다.

 

 

홍덕화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탈핵신문 2021년 8월(9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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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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