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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명의 미국 청소년, 미국 정부를 법정에 세우다

탈핵신문
  • 입력 2024.01.1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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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영화 '청소년 vs 기후정의를 외치다'

 

20158, 켈시 줄리아나를 비롯한 11~22세의 미국 청소년 21명이 미국 연방정부를 고소했다. 기후위기 상황을 알면서도 화석연료 생산 확대를 지원해옴으로써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기후시스템에 대한 헌법적 권리를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이 소송은 줄리아나 대 미국 사건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고 기후소송의 교과서로 불리고 있다. 크리스티 쿠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청소년 vs 정부 : 기후정의를 외치다>(원제 Youth vs Gov, 2020년 작품)는 세계 제1의 탄소 배출 국가인 미국에서, 미국의 청소년들이 주체가 되어 미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이 역사적인 소송과 청소년들의 치열한 투쟁 과정을 5년에 걸쳐 기록한 다큐멘터리 작품이다.

 

‘청소년 vs 정부 : 기후정의를 외치다’의 한 장면
‘청소년 vs 정부 : 기후정의를 외치다’의 한 장면

 

소송의 원고로 참여한 21명의 청소년들은 제각기 다른 인종과 혈통으로 태어나 서로 다른 지역과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강력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기후위기를 목격하고 느끼며 기후위기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루이지애나주에서 사는 14세의 제이든은 홍수로 집이 잠기는 피해를 겪었고, 알래스카에 사는 18세의 네이선은 매년 겨울 기온이 올라 마을이 서서히 녹는 것을 목격했으며, 애리조나주 원주민 보호구역에 사는 17세의 제이미는 심각한 가뭄에 직면했다. 플로리다에 사는 리바이는 점점 강해지는 허리케인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고 있고, 오리건주에서 농사를 짓는 제이콥은 산불로 인한 연기로 피해를 입고 있다. 소울 풍의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아지, 아즈텍의 전통에 따라 모든 생명이 신성하고 보호되어야 한다고 믿는 슈테즈카트, 온난화로 모든 이의 삶이 물에 잠기는 위험을 겪게 되리라 생각하는 빅, 원고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원고 대표가 된 켈시 줄리아나까지 21명의 청소년들은 각자 확고한 문제의식과 변화의 의지를 가지고 미국 연방정부에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법정 투쟁에 나선 것이다.

이들 청소년들을 하나로 엮어준 사람은 변호인단 대표 줄리아 올슨이었다. 2010년에 아워칠드런스트러스트를 설립하고 어린 세대를 대리하여 기후소송을 시작했던 그녀는 2011나는 미국을 상대로 소송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10살의 슈테즈카트를 만나면서 줄리아나 대 미국 사건으로 불리는 이 소송을 준비하게 되었다. 처음 두 명의 원고로 출발했지만 점점 더 많은 청소년들이 원고로 참여하게 되었고, 기후위기 대응을 촉진하고자 하는 법률가들과 기후위기 문제를 심각하게 느끼는 청소년들이 힘을 합쳐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소송은 지금까지 8년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미국 정부의 대리인들은 소송 성립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는다며 법원에 이 소송을 중지시켜 달라고 요구했고, 본 소송을 진행할 것인가를 두고 지방법원과 연방법원, 연방 항소법원 등을 거치면서 심리가 계속되었다. 변호인단은 수많은 정부 보고서들, 그리고 정부에 조언했던 과학자들과 기후위기 대응을 주장했던 과거 정부 참여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미국 정부가 카터 행정부 시절부터 40년 넘는 기간 동안 지구온난화 문제를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화석연료 생산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해왔고, 화석연료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왔음을 밝혀낸다. 줄리아 올슨은 법정에서 미국 정부의 그런 조치들이 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미래를 빼앗는 행위인지를 감동적으로 역설한다. 원고인 21명의 청소년들은 법정에서, 국회 기후공청회에서, 또 영상으로 그들이 겪는 기후위기 피해를 생생하게 증언했다. 재판이 있는 날엔 법정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국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고 변화를 촉구했다. 또한, 법정 싸움에 머물지 않고 수많은 미국 청소년들과 함께 기후정의를 외치며 행진하고 전 세계 청소년 기후운동과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거대한 기후정의운동의 물결을 이루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나면서 청소년들은 청년이 되어갔다. 영화는 그 과정들을 충실하게 따라가며 그 현장을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20201, 연방 항소법원은 일시 중지된 소송을 진행시켜 달라는 원고들의 항소에 대해 2:1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다. 세 명의 판사 중 두 명이 법원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명령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이 사안을 사법부가 아니라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다뤄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변호인단은 정부 정책의 위헌성을 확인해달라는 것으로 청구 취지를 일부 변경하여 다시 1심 재판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또한, 이 소송에 이어 미국의 여러 주에서, 또 세계 여러 나라에서 청소년들의 기후소송이 연이어 진행되었고 일부 국가들에서는 청소년들이 승소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도 몬태나주에서 청소년들이 승소했다. 영화는 항소법원의 패소 판결 후 청소년들이 좌절을 극복하고 또 다시 투쟁을 이어가는 모습과 세계 여러 나라로 청소년들의 기후소송이 들불처럼 번져나가는 모습들을 보여주며 희망적으로 마무리된다. 기후정의를 위한 청소년들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깊은 울림으로 전해주는 다큐멘터리 영화 <청소년 vs 정부 : 기후정의를 외치다>는 지금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남태제(영화 <월성> 감독, 환경저널리스트)

탈핵신문 2024년 1월(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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