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1일 밀양에서 ‘행정대집행’이라는 이름의 국가폭력이 자행되었다. 2024년, 올해는 그 일이 벌어진 지 꼭 10년째 되는 해다. 탈핵운동에서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 우리가 간혹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 그리고 송전선로의 문제를 함께 다루며 지역이 당하는 차별과 혐오, 배제와 비민주성을 지적한다면 이 이야기의 시작이 밀양 송전탑 반대 싸움이었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해야 한다. 한국 사회의 탈핵 담론은 밀양 송전탑 투쟁을 통해
총선을 앞두고 기후정치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늘었다. 누구나 기후위기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대응 방법은 천지 차이다. 전환 경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기후위기의 원인을 따지는 것이 그만큼 더 중요해졌다. 역사 문제로 바꿔 말하자면, “기후가 역사에 남긴 영향이 아닌 역사가 기후 속에 남긴 영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한 역사적 배경을 굳이 추적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화석연료의 장점은 일일이 따지지 않아도 될 정도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값싸고 풍부한 석탄이 산업혁명을 추동하고 자본주의의
법원은 사회의 많은 문제에 있어서 법률에 근거해 최종의 판단을 제공하는 곳이다. 서로 주장과 반박을 통해 옳고 그름을 따져 묻는 검사와 변호사같이 법률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한 가지 문제를 깊이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판사가 종합적인 판단을 법률에 근거해 하게 된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사법적 판단에 대해 신뢰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무수히 많았던 핵발전소에 대한 판결을 보며 그간 많은 이들이 법원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곤 했다. 이 책은 일본에서 두 곳의 핵발전소를 멈춰 세운 판결을 한 히구치
다시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의 계절이 찾아왔다. 윤석열 정부가 앞장서서 시대 역행적인 무탄소 연합을 추진하고 있는 탓인지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생산을 세 배 늘리고 에너지 효율을 두 배 가량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 서약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럴듯한 선언과 초라한 결과를 반복해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결정적인 문턱은 선언과 계획 너머의 기후 정치다.『기후 리바이어던』은 기후위기가 추동하는 정치·경제적 변화를 추적하며 기후 정치, 특히 주권의 문제를 파고든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녹색 자
영화 를 보면 4인의 성직자가 삼보일배를 하며 새만금에서 서울을 향하는 장면이 나온다. 세 걸음 걷고 한번 길바닥에 엎드려 절을 하면서 새만금의 생명들을 위한 기도를 하는 성직자들, 그들은 영화 속에서 지쳐서 길바닥에 쓰러져서 울기도 하고, 오랜 삼보일배로 인해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도 휠체어에서 타인에 손에 이끌려 끝까지 순례를 이어갔다. 새만금 방조제는 건설되었으나 수많은 뭇 생명을 위해 자신을 희생해가며 걷는다는 삼보일배는 여전히 수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수많은 사람이 그들의 걸음에 동참했고, 그들의 걸음을
우크라이나 전쟁과 한반도의 핵 위기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자포리자 핵발전소와 러시아의 전술핵 사용 여부가 전쟁과 핵 기술의 관계를 떠올리게 했다면, 북한과 러시아의 정상회담은 한반도가 핵 위기의 또 다른 현장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은 단순히 군수품 조달과 군사 기술 이전을 맞바꾸는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참혹한 전장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하나로 연결된 위기의 징후이다. 『연결된 위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무력 점령 위협, 북한의 핵 도발 위협이 동떨어져 있지 않을뿐더러 동
2011년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수많은 책과 미디어가 핵사고의 원인과 결과를 다루었다. ‘참사’라는 말을 붙여야 할 만큼 심각한 결과를 낳은 사고였고, 그 영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이 사고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은 당연했다. 혹자는 단순히 그 사고가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후쿠시마』의 저자 앤드류 레더바로우는 집요하게 이 사고의 원인과 결과를 파고들었다.책은 일본의 개항 시기, 즉 1852년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강요된 개항을 통해 근대화에 접어든 이후 서구열강과 경쟁할 만큼의 이른바
국민의 85% 이상이 후쿠시마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를 반대하며 국제해양법을 위반한 일본 정부를 국제 해양재판소에 제소하라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데 정부와 핵산업계는 바다 생태계와 수산업, 먹을거리의 위협에 직면한 국민의 불안에 대해 괴담과 과민반응으로 치부하며 정치적으로 공격하고 있다.그동안 나온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관련한 다양한 활동과 글과 영상 중에서도 탈핵신문과 반핵의사회가 펴낸 『후쿠시마 오염수의 진실 10문 10답』은 소책자의 형태로 접근성이 쉬우면서도 명쾌하게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의 진실과 핵심을 잘 풀어냈다
지구가 끓고 있다. 기상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7월을 보냈지만 멀지 않아 더 더운 여름이 찾아올 것이다. 경고음은 적어도 30년 전부터 울렸다. IPCC의 제1차 평가보고서가 나오고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된 게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실패한 30년”이라 해도 될 만큼 기후위기는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 위해 지배적인 기후위기 대응 방안과 거리부터 두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현실을 직시하되 현실에 갇히지 않는 상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상상력이라는 말 앞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는 김종철 전 녹색평론 편집장이 쓴 책이다. 무려 430쪽에 달하는 책인데다 저자인 김종철 선생이 평소 다양한 분야의 여러 책을 읽고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 이쪽과 저쪽의 이야기를 넘나들며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는 사상가인 터라 읽기 만만한 책은 아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녹색평론과 수많은 강연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해온 작가인지라 낯설거나 난해하지는 않다. 저자는 현상을 다룰 때 본질에까지 파고들기 위해 역사를 이야기하고, 정치와 경제를 넘나들며, 외국의 다양한 자료를 찾아 읽고 인용하는 방식을
소형모듈형원자로(SMR)를 이어 전체 사용전력을 핵발전을 포함한 무탄소 에너지원으로 공급받아 사용하자는 CF100이 논란이 되고 있고, 핵발전을 확대하기 위한 윤석열 정부의 구상은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다. 다시, 핵발전은 기후위기의 대안이 아니라는 사실부터 짚고 넘어가야 하는 현실에 많은 이들이 답답함을 느낄 듯하다. 이와 같은 상황은 탈핵운동의 말들이 어디로 가서 누구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인지 되묻게 한다. 핵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들의 이주 요구를 귀담아듣는 이들은 어디에 있을까, ‘탈핵 잇다’의 이야기를 눈여겨보는 이들은 누구
미국 작가 어니스트 칼렌바크가 1975년에 발표한 소설 『에코토피아』는 1991년에 국내에 번역 출판되었다. 서구에서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이 작품은 1,2차 석유파동과 체르노빌 핵사고를 겪은 후 한국 사회에 소개되어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핵발전과 기후변화가 초래한 위기가 심각한 상태에 이른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에코토피아』를 읽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이 묘사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의 상상도는 오늘날 전대미문의 위기와 근본적 전환의 길에 서 있는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제주에서 비자림로라고 불리던 삼나무 숲이 베어지던 때가 있었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벌목 현장으로 향했다. 베어질 위기에 놓인 나무를 부둥켜안고 저항했고, 톱날을 막아내지는 못했으나 그들의 운동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우리가 사랑한 숲이에요” 거창한 구호나 당위가 아니라 그저 ‘사랑’이라고 했다. 삼나무 숲, 제주의 사람들에겐 봄철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소문 때문에 미움의 대상이 되어버린 나무들의 군락이었다. 심지어 자생종도 아닌 산림녹화사업을 위해 가져다 심은 나무였다. 하지만 그런 나무에게도 어떤 이는 베어진
익숙해도 다시 보면 새로운 것이 있다. 아마도 『원자력의 사회사: 일본에서의 전개』가 그럴 듯싶다.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원자력의 사회사: 일본에서의 전개』는 조감도 같은 책이다. 이 책은 비판적인 시각에서 1939년부터 2011년 7월까지 일본 핵발전의 역사를 추적한다. 이를 통해 일본에서 핵 기술에 대한 전시연구가 시작된 이래, 핵발전 강국으로 도약한 뒤 연속된 사고로 핵산업이 침체된 과정까지 두루 훑는다. 이 책은 일본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지구적 차원에서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일본 핵발전 체제의 변동을 추적하는 만큼 비교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벌써 1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는 이 전쟁은 수많은 이들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 때아닌 전쟁은 국제 유가 상승을 부추기고, 유럽연합(EU)이 ‘녹색 금융지원 산업분류체계’(그린 택소노미)에 핵발전을 포함하는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핵발전소를 가운데 두고 마치 공멸을 원하는 듯 서로를 포격하며 싸우고 있다. 자포리자 핵발전소와 체르노빌 핵발전소, 두 곳은 대표적인 격전지였다. 점령군이 바뀌면 날아오는 포탄의 방향만 바뀔 뿐이었다. 두 세력 모두 핵발전소의 안전은
탈핵운동은 역류하는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까? 눈앞에 현안이 쌓여가는 상황에서 탈핵운동의 발자취를 여유롭게 되짚어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한걸음 물러서서 볼 때, 지뢰밭을 뚫고 갈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환경운동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는 『생태의 시대』에 눈길이 가는 이유다. 『생태의 시대』는 국가 경계를 넘나들며 환경운동의 이슈, 사건, 인물, 정책을 아울러 19세기부터 최근까지 환경운동의 역사를 추적한다. 세계사적 시각에서 이 책보다 환경운동의 역사
라는 영화를 봤었다.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한 후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낸 영화였다. 한때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 되기 전 이 영화를 보았고, 이 영화가 그가 ‘탈핵’이란 것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떠돌기도 했다. 이후 그 영화를 보고 ‘탈핵’을 결심했다는 그의 말은 언론과 당시 야당에 의해 조롱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눈에 보이는 위협이나 적의 가득한 악당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극 중 인물들이 느끼는 공포와 절망감이 백번 이해가 되는 영화는 아마도 핵발전소 사고를 다룬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윤석열 정부의 기대는 과연 어디까지 실현될 수 있을까? 한국수력원자력이 폴란드 기업과 핵발전소 건설 사업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핵발전소 수출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다시 돌고 있다. 물론 기대가 현실이 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을 것이다. 당장 웨스팅하우스사가 미국 법원에 한수원의 핵발전소 수출을 제한할 것을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통해 “한국형” 원자로의 원천 기술을 새삼 떠올리며 미국의 (암묵적) 승인 없이 핵발전소 수출이 어렵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핵재처리 프로젝트와 현실 같은 소설 『파이로』 - 남태제(영화 감독, 환경저널리스트)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여러 논란과 비판 속에서도 오랫동안 끈덕지게 추진해온 핵재처리프로젝트를 정면으로 다룬 소설이 출간되었다. 박현주 작가의 『파이로』 (모두의 책, 2022년 8월 출간)다. ‘파이로’는 원자력연구원이 2007년부터 지금까지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재처리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에서 따온 말이다. pyro는 불을 뜻하는 접두어다. 소설의 제목은 ‘파이로프로세싱’이라는 핵재처리 프로그램을
때론 원치 않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평생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것들을 알아야만 할 때 말이다. ‘파이로프로세싱’이니, ‘재처리’ 같은 단어의 뜻을 하나하나 배울 때마다 근심은 한 뼘씩 커졌고, 결국 근심이 자라다 못해 가슴을 넘어 입 밖으로 비집고 나오는 순간부터는 팔자에도 없는 이른바 ‘탈핵 활동가’가 되는 법이다. 그저 소위 전문가들이 하는 연구의 제목일 뿐인 단어들이 그들에겐 가슴이 철렁하는 말이 되고, 때론 상흔이 되기도 한다. 파이로프로세싱이라니, 그 생경한 단어 하나 때문에 피 말리는 싸움을 시작한 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