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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를 멈춰 세울 충분한 이유

탈핵신문
  • 입력 2024.01.17 08:34
  • 수정 2024.01.1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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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준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국장

 

법원은 사회의 많은 문제에 있어서 법률에 근거해 최종의 판단을 제공하는 곳이다. 서로 주장과 반박을 통해 옳고 그름을 따져 묻는 검사와 변호사같이 법률을 다루는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한 가지 문제를 깊이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판사가 종합적인 판단을 법률에 근거해 하게 된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사법적 판단에 대해 신뢰한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무수히 많았던 핵발전소에 대한 판결을 보며 그간 많은 이들이 법원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곤 했다.

 

『내가 원전을 멈춰 세운 이유』(히구치 히데아키 지음, 강혜정 옮김, 생활성서, 2023년)
『내가 원전을 멈춰 세운 이유』(히구치 히데아키 지음, 강혜정 옮김, 생활성서, 2023년)

 

이 책은 일본에서 두 곳의 핵발전소를 멈춰 세운 판결을 한 히구치 히데아키라는 전직 판사가 퇴임 이후 쓴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내렸던 판결이 왜 그런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오이 핵발전소의 운전과 다카하마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막은 판결의 주된 논리는 크고 작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상황에 근거하고 있다. 게다가 핵발전소 자체가 가진 결함들은 재난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후쿠시마 핵사고를 통해 경험한 것 역시 판결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저자는 상식, 이성과 양식(良識)에 근거한 판결을 했다고 여러 번 밝힌다. 이는 전문가들의 과학적 논쟁에 매몰되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는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판결이 피해당사자, 즉 피폭을 당할 위험으로 인해 고향을 떠난 피난민들의 입장, 혹은 일어날지도 모르는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에 놓인 주민들의 입장을 고려한 판결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법이 소수자, 약자, 피해자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그 단순한 진실을 끈질기게 붙잡은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적 판단을 배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당한 질문에 전문가의 권위주의나 알아듣지 못 할 말들로 본질을 흐리지 않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답변해야 하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이라는 신념을 바탕에 두고 끊임없이 질문했다.

저자는 법관 출신답게 단어의 의미를 규정하면서 책을 시작한다. ‘위험이라는 말의 용례를 사고 발생확률이 높아지는 것과 피해의 규모가 커지는 것, 두 가지로 구분한다. 저자에게 핵발전소는 두 가지 모두의 측면에서 위험성을 가진다. 저자는 이를 후쿠시마 핵사고를 통해 설명한다. 핵발전소는 피해의 규모에서도 광범위하고 막대하며, 지진이나 지진해일과 같이 심각한 재난 뿐만 아니라 단전이나 단수와 같은 사소한 문제로도 대형 사고의 위험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두 가지 위험성을 모두 가진 핵발전소에 대해 저자는 완벽한 위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위험의 두 가지 측면 즉 피해의 규모 면에서나 사고 발생확률 모두에서 핵발전소는 위험하다는 말이다. 특히나 일본과 같이 상시 지진이 발생하는 나라의 경우 내진성이 중요한데 일본 대부분의 핵발전소가 지진에 대한 내진성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실정이기에 사고 발생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재판과정에서 겪었던, 그리고 판결 이후에 곳곳에서 보고들은 핵발전소 추진 세력들의 주장에 관해서도 책을 통해 반박하고 있다. 그중 저자가 많은 면을 할애한 부분은 지진과 관련된 여러 주장에 대한 반박이다. 지진학은 보지 못하는 저 땅속 세상을 그저 추정하는 것에 불과하고, 지진의 예측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않아 여전히 연구과제가 산적해 있고,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지식을 근거해 핵발전소의 안전 규제 근거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수많은 법관은 핵발전소에 대한 재판이 전문기술 소송, 즉 고도의 전문지식에 근거해야 한다거나, 규제기관이 합리적으로 만들어낸 규제기준에 부합하는지만 따지면 되는 것으로 치부된다거나, 과학자들에 대한 맹신, 현실과 동떨어진 과학적인 논쟁에 매몰되어 있어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고 말한다. 아울러 사회통념처럼 되어버린 주장들에 대해서도 반박하고 있다. 핵발전소가 전력부족을 해결하고 탄소배출을 줄인다거나 방사능에 대한 공포가 과장되었다는 주장들 말이다.

사실상 과학이자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말은 핵발전소 문제를 어렵게 만들뿐 아니라 우리가 손댈 수 없는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실상은 문제가 생겼을 때 피해를 당하는 당사자임에도 말이다. 히구치 히데아키 판사의 이 책은 그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잠재적 피해라고 해도 위험이 자명하다면 충분히 핵발전소를 멈춰 세울 이유가 된다고 말이다.

탈핵신문 2024년 1월(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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