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책] 화석 자본 _ 화석 자본에서 공공 재생에너지로

탈핵신문
  • 입력 2024.03.05 13: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덕화 충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총선을 앞두고 기후정치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늘었다. 누구나 기후위기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대응 방법은 천지 차이다. 전환 경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기후위기의 원인을 따지는 것이 그만큼 더 중요해졌다. 역사 문제로 바꿔 말하자면, “기후가 역사에 남긴 영향이 아닌 역사가 기후 속에 남긴 영향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화석연료 사용이 증가한 역사적 배경을 굳이 추적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화석연료의 장점은 일일이 따지지 않아도 될 정도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값싸고 풍부한 석탄이 산업혁명을 추동하고 자본주의의 발흥을 이끌었다는 주장은 자명한 것처럼 보인다.

 

『화석 자본: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안드레아스 말름 지음, 위대현 옮김, 두 번쩨테제, 2023)
『화석 자본: 증기력의 발흥과 지구온난화의 기원』(안드레아스 말름 지음, 위대현 옮김, 두 번쩨테제, 2023)

 

화석 자본화석 경제의 역사적 기원에 대한 설명에 의문을 제기하며 산업혁명 초기 수력과 석탄 사이의 경쟁을 재조명한다.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적 과정을 촘촘하게 추적하는 만큼 흥미로운 질문들이 이어진다. 예컨대, 저수지 조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력을 이용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경제적으로도 합리적인 상황에서 기업가들이 수력 대신 석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려면 자본 간 경쟁과 기계의 도입, 노동의 저항 등이 에너지전환과 밀접하게 얽혀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단적으로 들쑥날쑥한 수력의 리듬은 기업가들이 노동시간을 손쉽게 통제할 수 있었던 시기에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노동을 기계의 리듬에 종속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대두된 것은 노동자들의 저항이 확산된 이후의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자본가들은 협력과 계획을 통해 수력의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보다 석탄으로 전환하는 것을 선호했다. 자본 간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시장과 노동에의 접근성과 기계에 대한 통제력을 높이는 데 석탄이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수력과 석탄 경쟁의 역사는 인과의 방향을 뒤집는다. 즉 수력에 기초한 공장 체계 내에서 자본주의 생산 관계가 확립되었고 증기기관이 확산한 것은 그 뒤의 일이다. 그리고 석탄으로의 전환을 이끈 것은 자본주의 생산 관계와 에너지 흐름 사이의 비 호환성 때문이다. 화석 경제를 넘어 화석 자본을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자본이 주도한 석탄으로의 전환은 훨씬 더 역동적이고 모순적이었다. 무엇보다 석탄은 수력과 달리 에너지 생산 자체를 인간 노동에 의존했다. 증기기관이 늘수록 더 많은 노동자가 석탄을 캐러 땅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여기서 티머시 미첼의 탄소 민주주의를 떠올린다면, 화석연료로의 전환에 함축된 사회적 쟁투의 의미가 한층 선명해진다. 탄소 민주주의가 보여주듯이 석탄 경제는 탄광, 철도, 운송 노동자 없이 굴러갈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에너지의 채굴, 운송 등에 있어 노동 의존성을 낮추는 것이 석탄으로부터 석유로의 전환 과정에서 지배 세력의 정치적 목표 중 하나가 되었다.

에너지전환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바, 동력(power)의 전환은 권력(power)관계의 재편을 겨냥한다. 이제 화석 자본은 과거에서 현재로 시선을 옮겨 분산·지역 에너지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 의문을 던진다. 예컨대, 저자는 (소규모) 분산형 재생에너지에 대한 낙관적 기대는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서 지구적인 팽창을 추구하는 화석 자본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는다. 이와 같은 문제 제기는 에너지 민주주의, 체제 전환 등의 이름 아래 탄소환원주의를 비판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최근의 전환 경로 논의로 한 발짝 더 다가오면, 기후정의 운동이 주창하는 공공 재생에너지만큼 화석 자본의 눈길을 끄는 것도 없을 듯하다. 민간 자본이 주도하는 대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이 늘면서 바람과 태양이라는 자연의 선물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할 것인지, 시민·주민 투자와 이익 공유로 충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찾아왔다. 달리 말하면, 탄소 고착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서 공공 재생에너지와 민영화된 재생에너지로 논의 지형을 확대·재편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짐작하건대, 이 지점에서 탈핵 경로를 둘러싼 논쟁은 피할 수 없다. 다만 화석 자본이 시사하듯이, 핵 경제와 핵 자본의 해체가 권력관계의 재편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탈핵과 공공 재생에너지를 결합하는 전환 경로만큼 도전적이지만 확실한 길도 없을 것이다.

탈핵신문 2024년 3월(119호) 

저작권자 © 탈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