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E=mc²이 핵폭탄을 만들었나?

탈핵신문
  • 입력 2024.03.06 10: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인슈타인과 원자폭탄'에 대한 단상

 

과학은 유용한 도구와 강력한 무기를 제공하지만 그것이 통제를 벗어나는 순간 위험이 되고 공포가 된다. 인공지능이 21세기의 무기이자 두려움이라면, 20세기의 무기이자 두려움은 바로 핵, 구체적으로는 핵분열 에너지였다. 그런데 그 20세기적 두려움은 종결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는 21세기에 일어났다. 지금도 여전히 몇몇 국가의 최고 권력자들이 핵무기 사용과 핵전쟁 운운하는 위협적 언사를 늘어놓고 있다. 그래서일까. 20세기 과학이 낳은 무기이자 두려움을 직시하는 콘텐츠들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영화 <마리퀴리><오펜하이머>에 이어 이번에는 <아인슈타인과 원자폭탄>이 나왔다. 넷플릭스 제작의 다큐드라마다.

넷플릭스 제작의 다큐드라마 '아인슈타인과 원자폭탄'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작의 다큐드라마 '아인슈타인과 원자폭탄'의 한 장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인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겠으나, 가장 유명한 과학자임에는 틀림 없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 유태계 독일인으로서 스위스와 독일에 거주하며 특수상대성이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집대성한 아인슈타인은 나치 정권에 반대하여 미국에 정착, 말년을 미국에서 보냈다. 아인슈타인이 핵폭탄, 핵발전과 연관되는 것은 그가 입증한 질량-에너지 동등성원리 때문이다. 그 유명한 E=mc²(에너지는 질량에 광속의 제곱을 곱한 것과 같다) 공식이 바로 그것이다. 물질이 변동할 때 잃어버린 질량에 광속의 제곱을 곱한 만큼의 에너지가 만들어진다는 것인데, 우라늄의 원자핵이 중성자와 부딪쳐 쪼개질 때 강력한 에너지가 발생하고, 우라늄의 핵분열이 연쇄적으로 일어날 때 가공할만한 파괴력을 가진 에너지가 분출되는 이유를 바로 이 공식이 설명해준다. 달리 말하면, E=mc²은 핵분열 에너지를 예측할 수 있게 하고, 핵발전과 핵폭탄 제조에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물리학 이론이었던 것이다. 다큐드라마 <아인슈타인과 원자폭탄>에서 아인슈타인은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이후 스스로 E=mc² 공식이 핵폭탄의 원인이 되었음을 고백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핵의 공포에 시달리게 된 책임이 아인슈타인에게 있는 것일까? 이 다큐드라마는 핵 개발로 가는 몇 가지 충분조건들, 직접 원인들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1939년 나치 독일의 과학자들이 우라늄 핵분열 실험에 성공한 사건이었다. 그전까지 아인슈타인은 가공할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이론적 가능성이 현실에서 결코 실현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나, 이 소식을 듣고는 독일이 핵폭탄을 개발하게 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하게 된다.

당시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로 있던 아인슈타인은 미국 대통령 트루먼에게 편지를 보내, 미국이 독일보다 빨리 핵폭탄을 개발할 수 있도록 실험을 추진하라고 강력하게 권유한다. 1942년 미국 정부는 핵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개발팀을 이끌어 결국 핵폭탄을 만들어낸다. 아인슈타인은 맨해튼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평화를 지키기 위해 독일보다 미국이 먼저 핵폭탄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오펜하이머와 공유했고, 이들의 생각이 미국의 핵폭탄 개발과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핵폭탄 투하, 그리고 소련의 핵폭탄 개발로 이어져 20세기의 공포를 창출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인슈타인과 원자폭탄>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를 짚어준다. 히틀러가 자살한 후 미군이 독일에 진주했을 때, 독일의 과학자들이 핵폭탄을 개발하는 데 실패했다는 증거를 미국이 확보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는 핵폭탄 개발을 강행했다. 일본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명분이었다. 아인슈타인은 이 대목을 비판한다. 일본을 굴복시키기 위해서라면 뉴멕시코주에서 진행된 핵폭탄 실험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것이다. 70만 명의 민간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핵폭탄 공격을 할 필요는 없었다는 것이다.

독일이 원자폭탄 제작에 성공하지 못할 걸 알았다면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데 일조하지 않았을 겁니다.”

다큐드라마에서 아인슈타인은 이처럼 뼈아픈 자기 고백을 한다. 그리고, 1939년에 트루먼에게 편지를 보냈던 일을 살면서 저질렀던 한 번의 큰 실수로 표현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린다. 그는 핵폭탄으로 인한 비극에 큰 책임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아인슈타인이 말년에 핵무기 반대와 평화운동에 앞장섰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핵폭탄이 만들어진 것은 아인슈타인의 E=mc² 공식 때문이었을까. 그것이 바탕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핵폭탄을 현실로 만든 것은 결국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권력의 욕망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과학을 공포로 만드는 것은 자본의 욕망, 권력의 욕망이다.

남태제(영화 <월성> 감독, 환경저널리스트)

탈핵신문 2024년 3월(119호)

 

 
저작권자 © 탈핵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